머무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여행을 왔다는 말은 맞지만, 떠났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살고 있었던 공과 다른 설렘보다는 습도였다. 공기가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 싫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은 나에게 언제나 환영에 가까웠다. 적어도 그것은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데이터가 오가는 세상에서 챗GPT는 많은 것을 바꾸고 있었다. AI기반의 팔렌티어라는 기업은 적합한 컨설팅을 해준다는 기업의 일자리를 모두 가져가고 있다.
숙소는 바다와 가까웠지만 바다가 보이지는 않은 곳이었다. 우주선을 닮은 느낌의 숙소는 정말 우주여행을 하는듯한 공간과 잠자리공간도 마치 긴 우주여행에 적합한 공간처럼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상당히 독특했다. 아마 이대로 가면 목성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창문을 열면 소금기 섞인 바람이 들어왔고, 저녁이 되면 알 수 없는 소음이 어김없이 따라 들어왔다. 나는 그 소음을 분류하지 않았다. 어떤 소리는 오토바이였고, 어떤 소리는 웃음이었고, 어떤 것은 그냥 이곳의 밤이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늘 비슷한 속도로 흘렀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을 걸었다. 길은 외우지 않아도 되었고, 길을 외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편했다. 목적지는 늘 비슷했지만, 여행에서 목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그 방향으로 걷다 보면 그 자리에 도착해 있었다.
식사메뉴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매번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먹어본 음식을 다시 시키지 않았다. 여행 올 때도 느꼈지만 한국인들의 한국음식 사랑을 대단했지만 필자는 항상 현지에서 해결하자는 주의다. 그것이 입맛에 맞지 않아도 말이다. 실패하지 않는 선택이 여행을 망친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실패를 굳이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런 음식을 먹는지가 궁금한 것이 이상할까. 한국인들은 컵라면과 고추장과 같은 음식을 챙겨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현지인 한 명과 자주 눈이 마주쳤다. 특별히 말을 건 적은 없었고, 그 역시 그러지 않았다. 그는 늘 같은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늘 같은 시간에 그녀를 지나치면서 눈인사를 했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사정도 몰랐지만 그 사실이 불편하지 않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건, 설명할 의무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바다너머에서는 맥킨지라는 회사가 5,000명을 해고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툴을 누구나 사용할 수가 있다. 그건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다. 에너지가 권력이 되고 에너지에 기반한 AI가 데이터 권력을 쥐게 되었다. 여행에서 네이버 검색 따위는 필요가 없어졌다. 조건만 주면 챗GPT는 쓸데없는 설명이 없이 아주 효율적인 노선을 짜주었다. 게다가 네이버 특유의 쓸데없는 광고 같은 것은 보지 않아도 되었다.아마도 네이버의 검색을 통한 매출은 앞으로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국에서 사용하던 시간의 단위가 여기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회의도 없었고, 마감도 없었고, 다음 계획을 묻는 사람도 없었다. 휴대폰은 조용했고, 달력은 텅 비어 있었다. 그 텅 빈칸들이 생각보다 나를 안심시켰다. 해외여행에서 처음 이렇게 쏟아지는 비는 처음 보았다. 비가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비는 이곳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 우기여서 그랬나 보다. 비는 이곳의 풍경을 바꾸지 않았고, 나도 바뀌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이 조금 더 느려졌을 뿐이었다.
필자는 숙명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쓰고 싶은 글만을 쓰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을까. 그건 해외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이야기는 쌓이고 있었고, 급하게 꺼낼 필요는 없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결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과정조차 필요 없었다. 미국의 부통령이 은의 최서하한선을 정했다고 한다. 즉 이 정도 가격을 보장해 줄 테니 은광에서는 은을 채굴하라는 직접적인 메시지였다. 먼저 움직이면 아무리 가격이 떨어져도 그것보다도 훨씬 더 낮은 가격에 자산을 조성할 수 있다. 그렇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항상 모든 일은 먼저 준비하면 더 많은 기회가 온다. 즉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은 휴식이라기보다는 거리였다. 세상과 나 사이에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거리. 그 거리가 생기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챗GPT는 그 거리의 한쪽에 있었다. 모든 것을 대신 생각해 주는 도구라기보다는 내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정리해 주는 존재였다. 검색을 덜 하게 되었고, 비교를 하지 않게 되었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만들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나는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해야 해서가 아니라, 지금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여행지에서의 글쓰기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결론도 없고, 정리도 느슨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느슨함조차 허용되었다.
누구도 다음 계획을 묻지 않았고, 이 글이 어디에 쓰일지를 묻지 않았다. 선택의 자유란 무엇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나중에 결정해도 되는 상태라는 것을 이곳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글의 끝을 굳이 정하지 않기로 했다. 나만의 이야기는 이미 쌓이고 있고, 꺼내는 순서만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니까. 아마 이 글도 돌아가서 읽으면 조금은 낯설 것이다. 하지만 그 낯섦이 지금의 나를 증명해 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