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의 신의(神醫) 이태준

함안에 자리한 이태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보는 이태준기념관

의료기술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의학과 관련된 인물에 대한 책을 읽어본 사람 중에 히포크라테스가 가장 먼저 연상된다. 의료는 사람에게 향해있다는 것은 마음으로 알지만 실천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함안에는 1883년 늦가을에 아이가 태어났다. 지금 그의 생가는 댐 공사로 인해서 수몰되고 없었다. 도천재라는 이곳 학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며 가난과 씨름하며 지내다가, 새로운 길을 찾아 무작정 상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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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한 서울에서 1907년 군대해산으로 다친 대한제국 군인들을 극진히 병원으로 실어 나르고 치료하던 김필순에게서 크게 자극을 받아, 본인도 의사의 길을 택한 것이다. 난징에서 앞날을 도모하던 이태준은 1914년 4월 무렵 상하이에 자리를 잡은 김규식과 의논 끝에 몽골에 비밀 군관학교를 설립하기로 하고 고륜(지금의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으로 향하면서 그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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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선 당시 매독이 퍼져 자칫하다간 국민의 70~80%가 사망할 지경이었다. 대암의 동의의국은 스스로 개발한 의약품으로 이 국민병을 퇴치했고, ‘까우리(고려) 의사’ 이태준은 이내 몽골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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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의료기관인 세브란스의 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제2회 졸업생이었던 이태준 선생은 단순한 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의술을 통해 인간을 살리는 일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는 일을 동시에 실천했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삶을 기리기 위해 함안에는 그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이태준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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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선생은 몽골 울란바토르에 ‘동의의국(同義醫局)’이라는 병원을 세워 의료 환경이 열악했던 몽골인들에게 근대 의술을 전했다. 당시 몽골은 체계적인 의료 시스템이 거의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그의 활동은 단순한 진료를 넘어 생명을 지키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국적과 민족을 넘어선 그의 의료 활동은 오늘날에도 인류애 실천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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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서 만나보는 그의 삶은 의료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몽골을 거점으로 중국과 러시아 일대에서 펼쳐진 항일독립운동에도 깊숙이 관여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고 조직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의료인의 신분은 독립운동을 위한 중요한 위장이자 통로가 되었고, 그는 그 위치를 조국을 위해 기꺼이 사용했다. 환자를 돌보는 손과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는 마음이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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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의 이태준 기념관은 이러한 삶의 궤적을 차분히 보여주는 공간이다. 전시실에는 그의 의료 활동, 몽골에서의 생활,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어 한 인물이 어떻게 시대와 맞서며 살아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화려한 연출보다는 기록과 이야기 중심의 전시가 이루어져 있어,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삶을 따라가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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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몽골에서 ‘슈바이처와 같은 존재’로 존경받았던 그의 모습은, 국경을 넘어선 봉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의술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지만, 그의 의술은 한 사회를 일으켜 세우는 역할까지 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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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면, 한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넓은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함안이라는 비교적 조용한 지역에 자리한 이 공간은, 근대사의 격동 속에서 인술과 애국을 함께 실천했던 한 의사의 삶을 기억하게 하는 뜻깊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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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단순한 인물 기념관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책임과 시대에 대한 응답이 무엇인지를 묻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의료와 독립운동, 봉사와 신념이 하나로 이어졌던 이태준 선생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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