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신양명의 박달재

눈 덮인 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 — 선비의 길의 박달재

예전보다 길은 훨씬 편해졌고, 자동차로 고개 하나 넘는 일은 더 이상 큰 수고가 아니다. 이제는 자율주행자동차가 나오면 사람이 운전을 하는 일도 없어질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스러운 길과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에도 길이라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디론가 떠나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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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과 단양을 잇는 박달재는 그런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터널과 도로가 이어져 쉽게 오갈 수 있지만, 과거 이 고개는 수많은 사람들이 땀과 숨을 내어놓으며 넘어야 했던 길이었다. 개인적으로 박달재라는 이름만 붙어 있던 이곳을 자주 오가면서 조금은 더 애착이 생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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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재길은 과거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에게 박달재는 단순한 고개가 아니라 입신양명의 꿈을 품고 넘던 관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곳은 입신양명과 관련된 공간을 조성을 하고 있다. 올해 봄이 되면 그 공간이 모습을 드러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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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지나며 누구는 희망을 품었고, 누구는 낙방의 두려움을 안고 걸었을 것이다. 고개를 오르는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각자의 사연과 각오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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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박달재를 방문하면 그 치열했던 선비들의 발걸음의 흔적은 눈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고요한 숲과 맑은 공기가 남아, 이곳이 오히려 사색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화려한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는 소리마저 낮아지고, 나무들은 잎을 비워 하늘을 더 넓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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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 속에서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서두르던 마음보다,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더 잘 어울린다. 꿈을 향해 넘던 길, 이제는 쉬어가는 길이 박달재다. 겨울의 박달재가 주는 의미는 겨울의 산길은 많은 것을 덜어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색이 줄어든 대신 형태가 또렷해지고, 소리가 사라진 대신 생각이 남는다. 과거 선비들이 이 길을 넘으며 미래를 꿈꾸었다면, 오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잠시 멈추어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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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 않은 곳에 조성되어 있는 박달재자연휴양림 일대는 지금 자연 속에서 머물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울창한 숲길과 계곡, 그리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책로는 과거 험난했던 고개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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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며칠을 걸려야 넘을 수 있었던 길이었지만, 오늘날의 박달재는 오히려 속도를 늦추기 위해 찾는 장소가 되었다. 치유숲길을 따라 걸으며 들리는 발자국 소리와 겨울바람의 흐름은, 바쁘게 흘러가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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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잘 알려진 박달도령과 금봉 낭자의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사랑과 이별의 전설은 세월을 지나며 노래가 되고, 목각공원에 조성된 조형물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는 넘기 힘든 고개였고, 돌아오기 어려운 길이었기에 사람들의 감정이 더 깊게 남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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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향해 나아가던 길이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는 길이 된 셈이다. 박달재는 더 이상 넘기 힘든 고개가 아니라 삶의 속도를 잠시 낮추고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쉼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높은 곳에 오르면 멀리 보이듯 조금 쉬어가야 다시 길이 보인다. 겨울의 박달재는 바로 그런 시간을 건네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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