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로컬라이프

익숙하지 않지만 금방 익숙해지는 삶 속에서 느끼는 새로운 발견

엊그제 같았던 시간도 금방 지나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런치플레이션이라는 말이 있듯이 단 돈 만원으로 먹을 수 있는 식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잘 차려진 한 끼 식사를 먹으려면 15,000원은 아무렇지 않은 한국이지만 필리핀에서의 식사는 5,000~7,000원에 만족할만한 식사를 할 수가 있어서 좋다. 이것도 현지에서는 비싼 가격이지만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기에는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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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그럴듯한 호텔에서 묵을 수도 있지만 현지에 잘 세팅된 가정집과 같은 곳에서는 1박에 2,500페소에서 4,000페소까지 다양하다. 마치 현지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물론 이보다 적은 비용으로 숙박을 할 수 있는 곳들도 있다. 여행을 떠난 세부에서의 아침은 관광 일정이 아니라, 그냥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에 가까웠다. 창문을 열면 따뜻한 공기가 먼저 들어오고, 멀리서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와 닭 울음소리가 알람처럼 하루를 깨운다. 이곳에서는 어디를 가야 할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이 시간에 섞여 들어갈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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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현지의 다양한 과자와 음식을 사서 먹을 수가 있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식을 한 번도 먹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냥 그 자체가 재미가 있다. 필자가 있었던 숙소 주변으로 다른 외국인들은 있었지만 한국인은 한 명도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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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가볍게 식사를 하고 세부의 로컬을 돌아본다. 한국에서의 아침은 늘 빠르게 지나가지만, 세부의 아침은 이상하리만큼 천천히 흘렀다. 누군가는 이미 수영장에 들어가 물을 가르고 있고, 누군가는 커피 한 잔을 들고 한참을 앉아 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하루가 충분히 채워지는 곳, 세부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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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에서 머문 숙소는 화려한 리조트라기보다, 잠시 살아보는 집에 가까운 공간이어서 좋았다. 수영장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테라스, 젖은 수영복을 말려 두는 난간, 그리고 아침이면 자연스럽게 들리는 사람들의 인사 소리까지. 여행객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동네에 며칠째 살고 있는 사람처럼 하루가 흘러갔다. 수영장을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2미터에 가까운 수심 덕분에 수시로 다이빙을 하면서 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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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식사는 무난했다. 가격대도 괜찮고 식사의 수준도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특히 고기가 곁들여진 식사는 한국의 고급레스토랑에서 먹는 세트메뉴만큼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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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세부는 열대과일이 풍부한 곳이다. 가격도 저렴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있어서 더욱더 좋다. 한국인들은 타이트한 도심생활 덕분인지 표정이 없지만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현지 사람들은 여유가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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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마트도 자주 이용했는데 먹거리도 좋지만 한국의 마트에서 보지 못했던 먹거리가 있어서 좋다. 마침 발렌타인데이가 얼마 남지 않아서 공항에서 살 것을 제외하고 가볍게 이쁜 초콜릿을 구입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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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하나 집어 들고 계산대에 서 있으니, 점원이 환하게 웃으며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코리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짧은 인사 한마디였지만, 그 순간 여행객이라는 경계가 조금은 흐려진다.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라기보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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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팔리는 소주도 눈에 뜨인다. 한국에서 팔리는 가격의 두 배쯤 되는 모양이다. 물을 건너왔으니 자연스럽게 가격이 비싸진다. 세부에서의 로컬 라이프는 거창한 체험이 아니라 이런 작은 장면들 속에 있었다. 숙소에서 시작된 아침, 천천히 먹는 식사, 수영장 물속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 마트에서 건네는 짧은 대화까지. 관광 명소를 몇 군데 더 다녀오는 것보다, 이런 반복되는 일상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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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로컬 골목을 걷고, 저녁이 되면 다시 숙소로 돌아와 테라스에 앉는다.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린다. 하루 동안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가볍다. 여행을 왔다는 느낌보다는 잠시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있다는 기분에 가깝다. 세부에서의 시간은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무엇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다. 그래서 더 자유롭다. 단순히 비용이 저렴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생활의 밀도가 다르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한국에서의 하루가 계획과 일정으로 채워진다면, 이곳의 하루는 공기와 온도, 사람들의 표정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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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결국 낯선 공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의 리듬을 잠시 빌려 살아보는 일이라는 것을. 세부의 로컬 라이프는 화려하지 않지만, 천천히 스며드는 따뜻함이 있다. 언젠가 다시 오게 된다면, 유명한 관광지보다 이 아침의 공기와 작은 마트, 그리고 수영장 물속으로 몸을 던지던 그 순간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그렇게 세부에서의 하루는 특별하지 않은 듯 특별하게,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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