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왕궁을 상상하는 함안

아라가야 왕궁 추정지에서 생각해 본 사라진 왕궁이야기

3월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완연한 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하게 날이 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이런 시기는 다양한 곳을 다니면서 사색하기에 너무나 좋은 때다. 3월이 시작한 때에 조용한 도시를 찾아서 떠나보았다. 함안은 겉으로 보면 고요한 도시다 넓은 들판과 낮은 산,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이 이어지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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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 땅 아래에는 한때 왕국이 존재했었다. 기록 속에서 이름만 전해지는 나라 아라가야(阿羅伽倻)가 있었다. 가야연맹의 한 축을 이루었던 아라가야는 5세기 전후 낙동강 서쪽을 중심으로 성장한 세력이었다. 말산리 고분군에서 확인되는 대형 목곽묘와 풍부한 철기 유물은 이 지역이 단순한 지방 세력이 아니라 상당한 정치적·군사적 역량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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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을 매개로 한 교역, 왜와의 교류 흔적 등은 이 작은 왕국이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함안의 연꽃공원을 가보면 중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바로 아라가야 왕궁 추정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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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는 고대왕국의 화려한 궁궐이 남아 있지 않다. 복원된 전각도, 웅장한 성문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평탄하게 정비된 터와 주변의 고분군, 그리고 지형적 배치가 이곳이 정치적 중심지였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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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은 사라졌지만, 흔적은 남아 있는 곳이다. 고대 왕국의 궁궐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권력의 질서가 작동하던 장소였다. 의례가 이루어지고, 사신이 드나들며, 국가의 방향이 결정되던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터 역시 한때는 그러한 결정과 긴장이 오갔던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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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가야리 유적인 해발 45~54미터의 구릉부에 경사면을 활용해 흙으로 성곽을 쌓고 내부에는 고상건물과 망루 등을 세운 가야시대의 유적으로 예부터 아라가야 중심지(왕궁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흥미로운 점은, 남아 있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흙’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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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많지 않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간략히 등장하는 이름들, 그리고 고고학적 발굴 결과가 이 왕국의 실체를 대신 설명해 준다. 아라가야는 결국 신라에 병합되며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멸망은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왕국은 사라졌지만, 그 터는 남아 또 다른 시대를 지나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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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추정지에 서면 오히려 상상은 더 또렷해진다. 완전히 복원된 궁궐보다, 비어 있는 터가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채워졌다. 산업이 들어서고, 행정구역이 바뀌고, 관광지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고대의 중심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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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군과 왕궁 추정지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배치는 이 지역이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하나의 체계였음을 보여준다. 죽음의 공간과 통치의 공간이 함께 존재했던 구조는 당시 왕권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유적의 시기는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부터 6세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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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지역을 방문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사라진 왕국의 중심에 잠시 서 보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큰 제국의 역사만을 기억하지만, 작은 왕국 역시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세계였다. 아라가야는 멸망했지만, 그 시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흙 아래 겹겹이 쌓여 또 다른 도시를 떠받치고 있었다. 왕궁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이 자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웅장함이 아니라, 시간의 깊이다.


고대의 권력은 사라졌지만, 그 위에 서 있는 우리의 현재는 그 시간을 밟고 이어지고 있다. 왕궁은 없지만, 터는 남았다. 기록은 적지만, 흔적은 깊다. 함안의 아라가야 왕궁 추정지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를 보여주기보다, 무엇이 이곳을 지나갔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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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 왕궁지, 말이산고분군, 남문외고분군, 당산유적 등 아라가야의 핵심유적이 있는 이곳에서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고대왕국 아라가야가 무엇으로 기억되는지는 아마도 답은 이 터 위에 겹쳐진 시간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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