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여주이 씨의 흔적

집성촌, 가문의 의미와 달려져 가는 공동체의 흔적을 찾아서...

비가 내리고 있는 3월은 올해 피어나게 될 봄꽃을 기다리고 있는 달이기도 하다. 비가 내리면 자연스럽게 땅에서 그동안 숨죽여 기다렸던 새싹들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사람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는 것도 이와 다르지는 않다. 과거에 공동체의 삶은 집성촌 그리고 대가족을 위주로 이루어졌다. 마을사람들은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었다. 오늘날 집성촌의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 함안에 자리한 여주이 씨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방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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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재실(齋室)은 제향을 준비하거나 후학을 가르치고 문중의 뜻을 모으는 공간이었다. 일관재 역시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며, 한 개인의 집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신적 중심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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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재(一貫齋), 여주이 씨 가문의 정신이 머문 자리다. 함안군을 걷다 보면 특정 성씨의 흔적이 유난히 또렷하게 남아 있는 마을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단순히 오래된 한옥 몇 채가 남아 있는 공간이 아니라 여주이 씨(驪州李氏)가 오랜 세월 삶을 이어온 집성촌의 시간 속에 놓여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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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 자리한 공간이 바로 일관재라는 곳이다. 이름 그대로 ‘한결같음을 지킨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건물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라기보다, 학문과 수양, 그리고 가문의 질서를 이어가던 장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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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는 여주이 씨 일관재를 비롯하여 여주 이씨은재, 여주이 씨 영모대, 두곡 선당 문화지 등 마을의 의미를 담은 곳들이 있다. 은재(隱齋), 이름처럼 조용히 이어진 삶의 자리다. 일관재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또 다른 흔적, 은재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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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조용히 돌아본다. 이 마을에도 사람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같은 성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은 단순한 혈연 공동체가 아니라 교육과 예절을 공유하고 경제적 기반을 함께 유지하며 제례와 기억을 공동으로 이어가는 하나의 작은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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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隱)’이라는 글자가 말해주듯 이곳은 세속의 과시보다는 조용한 삶의 태도를 상징하는 공간에 가깝다. 재실과 고택, 그리고 그 주변에 이어진 옛 터들은 한 가문이 단절되지 않고 마을 단위로 정착해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분산 거주와 전통 제례 공간과 현대 생활공간의 분리와 같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집성촌의 물리적 구조는 유지되고 있지만 삶의 방식은 이미 현대 사회의 리듬 속으로 들어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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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주소와 아파트 동·호수로 관계를 맺지만 과거의 마을은 성씨와 가문이 곧 사회적 좌표였다. 집성촌은 다음과 같은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다.

✔ 혈연 기반의 사회 안전망

✔ 공동 토지 경작과 경제 협력

✔ 유교적 질서 유지와 교육 공간

✔ 기억과 제례를 통한 역사 전승

즉, 집성촌은 단순한 ‘모여 사는 형태’가 아니라 생활·교육·윤리·경제가 통합된 전통적 지역 시스템의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집의 형태는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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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의 여주이 씨 마을을 둘러보면 흥미로운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전통 한옥 사이로 현대식 주택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한 울타리 안에서 대가족이 함께 살았다면, 지금은 핵가족 중심의 생활을 지나 1인가구가 가장 많은 주거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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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오랜 시간 사람들이 함께 살아온 방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집성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이어져가고 있다. 오늘의 마을은 더 이상 혈연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간 속에 남아 있는 질서와 배치는 과거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이루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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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의 여주이 씨 일관재와 은재는 거대한 문화재라기보다 한 지역에서 가문과 삶이 어떻게 축적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생활사적 유산에 더 가깝다. 지금 우리가 이곳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집성촌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공동체 감각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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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돌아보면서 옛 공동체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라기보다 어떤 방식으로 시간이 변화했는지를 읽는 일에 가깝다. 재실은 더 이상 학문을 강론하는 공간이 아닐 수 있고 종택의 역할도 예전과 같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건물과 터는 여전히 한 가지 사실을 말해 준다. 이곳에서는 시간과 관계가 수평적으로 축적되어 왔다. 그래서 함안의 이 마을을 걷는 일은 단순한 답사가 아니라 질문 하나를 남기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방식의 ‘마을’과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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