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기획자가 되기로 했어요.

'첨단'을 동경하던 공대생이, FMCG(소비재) 브랜드 기획자가 되기까지

by 훌라내 킴




"저는 비전공자인데 BM이 될 수 있을까요? �"

상품기획이나 브랜딩에 관련한 강연을 나가면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질문 중 하나다.

FMCG 브랜드 기획자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내 짧은 식견이지만, 늘 감히 대답한다.

"물론이죠!"

...

비 전공자였던 연구원 출신 상품기획자가 브랜드를 총괄하는 부문장 되고,

커리어의 성숙기에 접어드는 현시점에서 진로나 커리어패스에 대해 고민하는

신입 혹은 3~7년 차 상품기획자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남기고자 한다.




내 전공은 의공학(Biomedical Engineering)이다.

학창 시절, 공부를 제법 하는 듯했지만
결국 ‘적당히’, ‘괜찮은’ 정도에서 멈추곤 했던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목이었던 [생명과학(Bio)]에,
왠지 ‘있어 보이는’ [의학(Medical)]을 얹고,
(결과적으로 내 ‘전략적 사고’의 기반이 되어준) 실용적인 [공학(Engineering)]까지 더한 이 전공은
수험생이었던 내게 주어진 선택지 중에 가장 매력적으로 빛이 났던 기억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석사 졸업 후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신입생들에게 외면받았고, 결국 자유전공으로 통합되는 수순을 밟았다.


전공 선택 후 10년도 채 되지 않아 학과가 사라진 셈이다.

그런데 과연, 이 선택이 틀린 것이었을까?

돌아보면 그 질문의 답은 ‘무엇을 배웠는가’보다는
그 배움을 가지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왔는가에 있었다.


내 전공은 결과적으로,
내가 사회에서 마주한 문제들,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
그리고 수없이 반복된 선택의 순간마다
조금 더 전략적으로, 유연하게, 그리고 구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간접 무대였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내 전공은 나를 ‘기획자’로 성장하게 만든 첫 번째 기반이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혹시라도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무엇을’보다 중요한 건, ‘왜’와 ‘어떻게’이며,

“무슨 과를 선택할까?”보다는 왜 그 길을 선택하려는지,

그리고 거기서 배운 것을 어떻게 삶과 세상에 써먹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막상 사회로 나올 무렵, 나는 전략팀을 동경했다.
역시 ‘전략’이라는 ‘있어 보이는’ 느낌이 지원의 이유였다.

1년여 동안 온갖 대기업 전략팀에 지원했지만,
서류 통과조차 하지 못하고 좌절하던 그때,
석사 전공을 살려 지원하자마자 일사천리로 면접에 합격한 곳이 있었다.

국내 3대 제조사 중 한 곳, FMCG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 그리고 직무는 연구직이었다.

카테고리는 다름 아닌 헤어케어.
생활용품 회사 안에서도 화장품의 영역에 더 가까운,
그리고 ‘이 브랜드가 회사를 먹여 살렸다’는 전통과 자부심이 남다른 조직이었다.


그때 배웠다.
조직이 무겁고 둔해지면,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는 걸.

쿠팡이라는 채널이 대규모 물류 투자로 로켓배송을 도입하던 시절,

당시는 대형마트 중심의 오프라인 유통이 지배적이었지만,
우리는 온라인이라는 미지의 땅으로 조금씩 무대를 넓혀가야 했다.

하지만 오래되고 무거운 조직은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내는 시장을 받아들이기엔 시야가 닫혀 있었고,
(어쩌면 받아들이기엔, 분골쇄신을 위해 부러뜨려야 할 아픈 손가락이 너무 많았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 나는 연구원이라는 수동적인 포지션과
오프라인 영업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에 숨이 막혀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그 후 1년간의 개인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쿠팡 1세대 브랜드 중 누구나 알 만한 이름을 가진 곳에서
상품기획자로 커리어를 전환했고,
2년 만에 상품기획 팀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덕분에 온라인 시장의 변화,
그리고 시장에서 선택받는 제품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지를
가장 전방에서 지켜보고, 직접 키워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디자인팀, 마케팅팀, 상품기획팀을 아우르는

브랜드 총괄 부문장의 자리에서,

제품이란, 브랜드란, 더 나아가 조직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느낀다.


� 그리고 이 글을 시작으로,

[히트 상품의 공통점]과 [아이디어 발굴법] 같은 아이디어 기획법,

브랜딩과 마케팅 전략,

협력사 미팅에서의 실전 노하우,

화장품법・약사법 등 생활용품 관련 실무 법규,

그리고 [조직과 브랜드를 움직이는 커뮤니케이션]과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까지,

차곡차곡 풀어보려 한다.


언젠가 이 기록이,
같은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