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재 Sep 06. 2020

‘몰라요’ 세상에 온 걸 환영해요

드라마 <키딩(Kidding)>



하늘이 파랗다는 건 아이들도 알지만, 그 하늘이 무너질 때 어떡해야 할진 어른들도 모른다.


순수한 감성이 색종이 위에 오려져 롱테이크로 담기고, 뒤이어 희번득한 표정이 나타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긴장감을 놓을  없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이후 미셸 공드리와  캐리가  번째로 호흡을 맞춘 드라마 <키딩>이다. 미셸 공드리는 연출진으로,  캐리는 주연으로 함께했다. 시즌1 2018 9, 시즌2 지난 2 미국 케이블 채널 쇼타임에서 방영됐다. 국내에선 지난 7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에서 시즌1, 2 동시 공개됐다.


짐 캐리는 전지전능한 신이어도 제멋대로 할 수 없는 인생을 <브루스 올마이티>의 ‘브루스 놀런’으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감정을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 배리쉬’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임’ 당하는 우리 모습을 <트루먼쇼>의 ‘트루먼 버뱅크’로 보여줬다. 짐 캐리가 필모그래피로 겪은 인생 희비극이 한 곳에서, 드라마 <키딩>의 ‘제프 피키릴로’로 펼쳐진다.


제프 피키릴로(짐 캐리)가 진행하는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 극장’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TV 쇼 프로그램이다. 방영 회차만 3000회가 넘는다. 대충 빗은 단발머리에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제프는 30년째 똑같은 모습으로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이들까지 위로한다. 반면 그의 인생은 웃음과 슬픔, 살색과 핏빛이 교차 편집된 ‘웃픈’ 성인 드라마다.



장담컨대 두 사람은 만나면 안 돼


“‘정상적 인간’은 사실 평균적인 의미에서 정상일 뿐”이라고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짚었듯, 우리 모두 마음속 어딘가는 날서있다. 제프 피키릴로도 마찬가지다. 마치 지킬 앤 하이드를 보듯, 두 자아가 뚜렷이 대비된다. 하나는 1억 1200만 달러짜리 라이선스 사업으로 장난감, DVD, 책 등 전 세계 에듀테인먼트 시장에 수출 판매되는 스타 ‘피클스 아저씨’고, 또 하나는 교통사고로 아들 필(콜 알렌)을 잃고 슬픔에 잠긴 아버지 ‘제프’다.


‘피클스 아저씨’가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의사라면, ‘제프’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다. 이때 ‘피클스 아저씨’가 거대한 상품이자 브랜드로 우선시되는 탓에 ‘제프’는 매번 뒷전으로 밀려난다. 넥타이 색 하나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고 트라우마가 된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매일 변함없이 ‘피클스 아저씨로 출근해야 한다.


슬픔은 분노로 자라나고, 분노는 끝내 크고 작은 사건으로 번진다. ‘진짜 제프’를 통제하기 어려워지면서, 프로그램 제작자인 아버지 세브(프랭크 란젤라)와 누나 디어드레(캐서린 키너)는 인형 탈을 쓴 성우나 만화 캐릭터처럼 통제하기 쉬운 ‘또 다른 제프’를 찾으려 한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나 없이 되겠나’ 싶었던 자리들이 다른 누군가로 메꿔진다. 아무거나 골라도 엇비슷한 맛이 나는 피클처럼 말이다. 멀리서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그에겐 모든 비극이 처음이다.



모든 고통에는 이름이 필요해


비극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마냥 밝은 모습으로 자신을 가뒀던 제프는 이제 없다. ‘그때의 제프’는 자기가 타지도 않은 차에서 죽어버렸다. 대신 비극을 직시하는 ‘지금의 제프’가 있다. 그는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을 배운다. 그 첫걸음은 자기 자신과의 화해다. 제프는 불편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가식 없이 쏟아내면서 자신도 몰랐던 모습을 발견한다. 아들 필이 죽은 그날 운전대를 잡았던 아내 질(주디 그리어)에 대한 원망을 깨닫고 아내를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깨닫는다. 


“어둠이 있다는 걸 감사해야 해. 어둠이 없으면 빛의 깜빡임이 보이지 않을 테니까라는 제프의 노래처럼, 기쁨과 슬픔은 뗄레야 뗄 수 없다. 어둠이 있어 빛이 보이고, 슬픔이 있어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불가분의 감정들이 어느 하나 배제되지 않고 존중받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끌어내는 시작점이 된다. 충분히 슬퍼할 권리를 자신에게 주고,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 안의 ‘피클스 아저씨’와 ‘제프’도 비로소 공존할 수 있다.



풍선을 들고 ‘인투디언노운’


꾹꾹 눌러 담아도 터져 나오는 감정을 어쩔 수 없듯,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질 시간도 계속 미룰 수만은 없다. 자신과의 화해가 감정이라는 벽돌을 꺼내와 집을 짓는 과정이라면, 타인과의 이별은 이미 무너져 내린 집을 떠나는 과정이다. 이별의 이유는 수천수만 가지일 테다. 갑작스러운 죽음일 수도, 기억을 잃어가는 병일 수도, 사랑인 줄 알았던 강박일 수도 있다. 이유보다 중요한 건, 세상 모든 건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 새로운 시작은 누구나 두렵고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변화를 기념할 때마다 제프는 풍선을 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새로운 선택을 강요받는 우리에게도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간절함이 우연이라는 모양새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를 그려낸 <키딩>도 마찬가지다. 극 중 쌍둥이 동생 윌의 마법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기억과 감정을 되돌릴 수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날, 그 무너진 틈새로 햇빛이 쏟아지는 순간도 있기에. 그 눈부심을 기다리며, 만끽하자.





<키딩(Kidding)>

공개 |  시즌 1(2018), 2(2020)

각본 |  데이브 홀스타인

연출 |  미셸 공드리, 제이크 슈레이어, 민키 스피로 外

출연 |  짐 캐리, 프랭크 란젤라, 캐서린 키너, 주디 그리어 外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작가의 이전글 멸망한 세상도 꽤 살만하더라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