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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Nov 15. 2020

픽사의 ‘잊혀지고 싶지 않아요’

영화 <코코(Coco)>



11월 첫째 날에서 둘째 날. 한국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흘러갔지만 지구 반대편 나라 멕시코는 달랐다. 일 년 중 단 한 번 있는
‘망자의 날(Día de Muertos)’이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죽은 이들의 영혼이 찾아오는 날. 매년 망자의 날을 맞아 멕시코 거리 곳곳은 주황빛 금잔화 꽃잎이 흩뿌려지고 해골로 분장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집집마다 촛불을 밝히고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 한때 좋아했던 음식을 차리기도 한다. 마치 미국의 할로윈, 우리나라의 제사 문화와 비슷한 중남미 최대의 명절인 셈.

멕시코 사람들에겐 한 해 중 제일 큰 명절, 전 세계 관광객들에겐 화려한 눈요깃거리로 손꼽히는 날이 안타깝게도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지나갔다. 오프라인 퍼레이드는 언택트 퍼레이드로, 길거리에 설치되던 커다란 제단은 온라인 뷰잉룸으로 대체됐다. 대신,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만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바로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한 <코코>다. 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 픽사가 제작한 영화로, 2017년 전미 박스오피스 1위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2018년 국내에 개봉했다. <코코>는 뮤지션을 꿈꾸는 12살 소년 미구엘과 의문의 남자 헥터가 유쾌한 티키타카를 펼치는 모험 이야기다. 죽은 자의 세상에 우연히 발을 들인 미구엘이 해가 뜨기 전 원래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기묘하고도 황홀한 여정을 이어간다.


존재는 기억으로부터


죽은 자를 그리는 날이 배경이어서일까, 영화 속 모든 캐릭터는 ‘잊혀지고 싶지 않아’ 한다. 저승에서 이승의 몸을 점점 잃어가는 미구엘과 영혼의 다리를 꼭 건너고 싶어하는 헥터뿐만 아니다. 손자가 꿈꾼 뮤지션의 길을 결사반대하던 할머니 엘레나도, 화려한 부귀영화를 누려온 ‘셀럽 중의 셀럽’ 델라 크루즈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사랑하는 가족이 날 떠날까봐, 혹은 세상이 날 잊어버릴까봐 두려워한다. <코코>가 말하듯,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면 시공간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에서든 ‘존재’할 수 있다. 반대로 기억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진짜 죽음을 맞이하는 법이다.

아버지가 치던 기타, 아버지가 써준 편지, 아버지가 불러준 노래.
미구엘의 증조할머니 마마 코코는 유일하게 아버지를 기억하는 ‘산 자’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앞두고 있는 인물이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노화로 죽음이 가까워져 오면서 자꾸만 기억을 잃어가고, 미구엘과 가족이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말없이 웃기만 한다. 아버지가 불러준 노래를 듣던 어린 코코는 어느새 늙은 할머니가 되어 손자가 불러주는 노래를 함께 부른다. 그리고 노래는 기억을 부르고, 기억은 사람을 존재하게 한다. <미구엘>이 아닌 <코코>라는 영화 제목은 노래가 만들어지고,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를 되짚는다.


클리셰가 아닌 철학


픽사는 잊혀지는  대한 감성을 정말  건드린다. 그리고   ‘잊혀지는  대한 감성이 특히나 예민한 편이다. 그 감성을 건드리는 영화는 <코코>뿐만 아니다. <토이 스토리>, <인사이드 아웃>,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영화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기 위한 회귀의 모험 지닌 형태가 대부분이다. 뜻밖의 여정 속에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그리고 이들을 보는 우린 지금껏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향수,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을 깨닫는다.

‘잊혀지는 것’
에 대한 관심은 1980~90년대 픽사의 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에도 녹아 있다. 우는 아기를 달래주는 <틴 토이>, 자전거 판매점에서 버려진 <레드의 꿈>, 혼자 외로이 자리를 바꿔가며 체스를 두는 <게리의 게임> 등 다양한 타이틀이 있다. 이쯤되면 ‘잊혀지고 싶지 않아요는 단순한 클리셰가 아니라 지금의 픽사를 만들어낸 단단한 철학일지도 모르겠다. 기억할 사람이 있고 기억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소중함을 <코코> 속 이멜다의 대사로 다시 껴안는다.


넌 이미 우리에게 축복 받았어.
아무 조건 없이.



P.S. 영화 <코코>의 삽입곡 ‘Remember Me’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tvN <이타카로 가는 길>에서 국카스텐 보컬 하현우가 커버하기도 했는데, 촬영 로케였던 그리스 멜리사니 동굴이 영화 속 배경의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길.



<코코(Coco)>

개봉 |  2018년 1월

감독 |  리 언크리치

출연 |  안소니 곤잘레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벤자민 브랫 外

등급 |  전체 관람가

(이미지 출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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