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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츄 Jun 16. 2017

School Fayre

6월 9일 금요일

 저녁에 아이 어린이집과 붙어 있는 초등학교에서 축제가 있어서 다녀왔다. 

작은 규모의 학교들에서 하는 축제들이라서 그런 건지, 이 동네가 고전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축제를 꼭 Fayre 아니면 fete로 좀 옛날스러운 영어를 쓴다. fair, fare, fest도 있는데.


 음- 내 기억에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때에 이런 학교 기금 마련을 위한 행사를 따로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모든 학교들이 정기적으로 이런 행사들을 한다. 학교 학부모회가 주축이 되어서 준비하고, 모자란 손은 시간과 열정이 되는 부모들이 보탠다. 학교에서 필요한 돈을 100% 정부 보조금 내에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모자라면 이렇게 모금 행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 동네 학교들은 대부분 한 학년에 한 반(20명)씩 밖에 없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모들도 웬만하면 서로 다 알고, 그중 절반 이상은 병설 어린이집 출신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 학교 친구 부모들과 모르고 지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나도... 아이의 어린이집 베프의 엄마와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 어머니는 무려 '교육 캠페이너'이기 때문에 학교 일뿐만 아니라 동네의 일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온 동네 학교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극강의 정보통. 타고난 리더십. 에또, 소설가 지망생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우연히도 나랑도 잘 맞는다. 


 어쨌든 그분의 이끔으로 나는 다른 몇몇 어머니들과도 자연스럽게 말을 트고 교류하게 되었다. 이제 다른 부모들의 얼굴도 익혔고, 시덥잖은 대화도 어색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때가 되어서 학교 축제에 가는 길도 발걸음이 가벼워졌달까. 처음 학부모가 되어 학교를 방문하는 길의 쭈뼛함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다. 그것을... 나는 이제 슬슬 극복하고 있는 중.

 학교 축제이긴 하지만, 시골이고, 학교도 작고 하니까 컵케잌이랑 핫도그 정도나 팔고 그러겠지... 하고 갔다가 입구에서. 뙇. 충격. 의. 난생처음 보는 규모의 바운시 캐슬(공기를 주입해 만드는 놀이기구)에 애들이 개떼처럼 바비큐 연기 속을 뚫고 들락날락 거리고 있었다. 누구라도 아는 얼굴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아이는 이미 다른 꼬맹이들이랑 바운시 캐슬 안에 들어가 코스를 돌고 있었다. 아이가 첫 번째 바운시 캐슬을 다섯 번쯤 돌았을 때, 같이 갔던 남편이 어린이집 애들이 저 쪽에 있다며 어린이집 마당으로 이동시켜 줬다. 

 이런 무질서 월드에서 넋을 잃은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애가 '어, 어디 갔지?' 하며 대화 자리를 떠나 애를 찾으러 다니는 부모가 태반이었다. 

 그래도 즐겁게 노는 아이들 보는 맛에 그런 건지, 노동당이 선전한 선거 다음날이라 그런 건지, 축제 분위기에 같이 젖어든 건지 내가 만난 부모들 대다수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애들이 어디 없어져서 놀던 말던, 우리도 한바탕 왁자지껄 떠들고 웃었다. 

 

 실컷 놀고 집에 돌아와서 미리 오븐에 넣어 굽고 있던 돼지 어깨살과 야채를 저녁으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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