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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Feb 15. 2022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을 때

사방에서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고. 당신은 스스로를 잘 아시나요?

이전 글에서 물건을 버릴 때 자신만의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가치관은 어떻게 생겨날까? 

물건을 정리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의 기준보다 자신만의 기준이 참 중요하다. 나만의 기준은 어떻게 세우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 또한 매일 찾고 있다. 그 중에 제일 그럴듯한 답은 

" 해봐야 안다." 였다. 


이게 무슨 말일까? 그냥 해보면 안다니. 그럼 어떡하라는 걸까. 


예를 들어 보겠다. 

나는 "다꾸"를 되게 좋아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을 때면, 다꾸 영상들을 보면서 힐링을 하곤 하였다. 

그리고 언젠가 목표를 달성하면, 다이소에 달려가서 다꾸 용품들을 잔뜩 사버리고 말 것이라 다짐했다. 


그러나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는데, 목표는 달성했지만 당시 언니 집에 살 때라 언니가 죄다 반품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지 못한 다꾸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강렬했다. 


그리고 지금. 혼자 살고 있는 나는, 단기 알바로 돈을 벌고 나서 바로 아트박스로 달려갔다. 그 환상적인 스티커들과 다이어리들과 캘린더. 펜들도 다 사버리고 싶고 정말 바구니에 담고 또 담아도 끝이 없어서 넘칠 정도였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데도 한참, 나는 18만원이 넘는 돈을 그곳에서 썼다. 다이어리도 사고, 가계부도 사고, 마리모도 사고, 다 적기도 힘들만큼 많은 걸 샀다. 거기서 산 것들은 도로에서 한번 종이봉투가 찢어져 몇개는 사라져버렸다. 아마 몇만원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나는 사라진 걸 체크하지도 않았고, 산 것들을 열심히 쓰지도 않았다. 아니, 쓰기는 했지만, 내가 산 것들이 20개라면 막상 쓰는 것은 5개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나는 이전에 간절히 하고 싶던 것을 하지 못했다. 타의에 의해서.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 소비제한이 있어 사지 못했다가, 드디어 직접 산 것이었다. 

문제는, 하지 못한 기간, 억지로 참았던 기간이 3년 정도로, 굉장히 길어진 것이었다. 


그냥 참고, 또 참고. 못 사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기간이 세 보니 벌써 3년이었다. 

그 사이에, 내가 애초에 10만큼 바랬던 것이, 상상 속에서 10배, 20배로 늘어났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한번에 많은 물건을 사고, 쓰고 나서야, 이렇게 많은 물건은 필요가 없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경험에서 내가 얻은 교훈이란 무엇일까?

충동구매를 자제하자?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사지 말자? 물욕을 버리자?

모두 아니었다. 


나는


"하고 싶거나 사고 싶은건, 곧장 하거나, 빠른 시일 내에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울 것"


을 배웠다. 



실행하지 않은 기간, 외면한 기간동안, 우리의 무의식은 그것에 대한 기대를 점점 늘리고 있다. 


막상 해보면 그렇게 크지 않은 욕심들이, 억눌리는 동안 수십배로 부풀려지는 것이다.


또한, 참고 또 참는다는 것은, 욕망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억눌린 채로 언제든 폭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한다. 사고 싶은 것들? 진지하게 따져보고,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재무 계획을 세우고 공간을 따져보며 사면 된다. 우리는 무작정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합리적인 소비와 계획, 실행이 필요할 뿐이다. 




돌아가서, 이 경험이 대체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


위에서 봤듯이, 내가 막상 많이 사봤자 쓰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그 쓰지 않는 물건들에 대해 가지는 나의 가치판단을 오인했던 것이다.

즉, "내게 쓸모없는 것을 쓸모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나는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고, 종이에 큰 변동을 주는 것들은 싫어한다. 예쁘더라도 거슬리거나 불편하면 손이 자주 안 간다. 이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고, 이 판단을 근거로 앞으로는 물건을 고를 때, 혹은 물건을 버리거나 처분할 때, 과연 내 손이 자주 가는 것일까? 내가 이걸 쓸 때 행복일 클까, 불편함이 클까? 같은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옷을 처분할 때도, 공간을 활용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에 맞추면 된다. 이런 것들은 경험해봐야 아는 것이다. 공간정리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일단 마구잡이로 손이 가는 대로만 해보아라. 무엇이든 일단 해보고 나면, 그때서야 아는 것들이 있다. 물건을 버릴 때, 어떤 것을 버려야 할 지 모르겠다면, 일단 제일 쓰지 않는 것들을 버려보아라. 아니면 당근마켓에 팔아보라. 그것이 사라져도 조금의 미련이 없다면, 홀가분하다면 그것은 그렇게 될 물건들이었다.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하거나, 변화가 싫고 낯설어서 괜히 냅두는 것은 없는가? 내 삶에서 필요 없는 부분들을 덜고 나면, 그 남은 자리에 다른 것을 채울 수 있다. 때론 빈 공간 그대로 좋을 수도 있다. 


당신이 싫어하는 물건은 이미 당신의 머리 한켠에 자리잡고 계속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당신은 홀가분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 해방감을 몇번 경험하고 나면, 언제부턴가 당신은 스스로 먼저 일어나 어디 더 정리할 건 없나 둘러보게 도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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