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infinite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movie)

by hiverte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영화화이다. 중학생 때부터인가 다섯 번은 더 읽었을 텐데 왜 영화를 이제서야 봤냐고 묻느냐면 글쎄 그 어느 때도 도무지 완벽한 타이밍 같지가 않았고 이제야 용기가 났던 것도 같다.

그럼에도 너무 많은 것들이 돌아오더라, 내가 한때 찰리였을 때 겪어내야 했던 모든 시간들 아팠던 모든 순간과 아름다웠던 모든 감각 - 마치 그때처럼 고스란히 쏟아져내리는 감정이 한가득이라 어찌할 지 몰라 내내 울었다. 도저히 잊고 싶지 않지만 일부분 잃어버린, 이따금 다시 살고 싶다가도 결코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제는 없는 그때 나의 월플라워

나만의 춤을 추고 싶은 날들이 있다. 모두 다른 춤을 출 때, 인간은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샘의 음악과 춤과 포스터로 가득한 방이, 패트릭의 유머와 우정과 트럭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건 또 처음이라 디테일을 한가득 들이마시느라 벅차 죽는 줄 알았다. 그들이 되고 싶은 동시에 그들이 된다는 건 참 아직까지도 두려운 일이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엠마 왓슨의 샘이 정말 좋았다 그냥 샘, 그 자체의 샘이 아니라 찰리 눈 속의 번뜩이는 샘이라는 사실이 영화 내내 고스란히 드러나서 참 좋았다, 찰리가 보는 샘은 샘이 아는 샘보다도 더 정확한 모습이니까 말이다.

더 스미스를 사랑하게 해준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는 rainbow rowell의 eleanor & park 인데 이 책에는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How Soon Is Now? 에 대한 정말 아름다운 묘사가 담겨 있다) Asleep을 들으면서 수도 없이 죽음을 상상했다, 나의 타인의 찰리의 깊은 잠 악몽과 뒤척임 그리고 새까만 죽음. 나는 이 책을 이 노래로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날고 싶었다. 고가도로를 질주하며 영원한 노래를 듣는 것은 일종의 낢과 같은 것이었고 나는 그래서 그 순간들을 잊지 않는다. 중학생 땐가 할머니 댁에서 새벽까지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깜깜한 집과 나 홀로 있는 부엌에만 켜진 허연 등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아마도 들었을 노래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늘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기에 그다지 다르지 않았겠지), 소설의 노래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음악과 밤과 바람과 공기에 밀려오는 모든 것들 and in that moment, i swear we were infinite

나를 찰리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닌데 다만 찰리의 모든 눈물이 마치 나의 것처럼 아프다 - 찰리는 내가 될 수도 있었던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세계가 온전하기를 바란다. 수트와 책과 타자기로 적어내려가는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마음, 그를 따라해보려 타자기는 없어도 키보드를 연결해 이 글을 적어보려 잠시 시도하기도 한다.

작가가 직접 감독한 만큼 영화화치고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었고 그건 정말 대단한 거야 물론 뭉개진 디테일은 있다 - 미처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 마이클이나 헬렌 이모가 고스란히 삽입되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 하지만 괜찮아 나는 다 알고 있으니까 나는 찰리의 이야기를 전부 아니까

이 영화를 보기 전날 록키 호러 픽쳐 쇼를 드디어 봤다. 이걸 위해 본 건 아닌데 어찌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보고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엠마 왓슨의 자넷과 에즈라 밀러의 프랑큰퍼터가 상상하기도 전부터, 록호쇼를 알기도 전부터 너무 좋아서 샘과 패트릭이 아니라 자넷과 프랑큰퍼터를 먼저 생각하고 캐스팅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았다.


그러고 보니 참 신기하다 내가 락을 알기도 전부터, 극예술을 사랑하기도 전부터 사랑한 이 책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내 세계는 태초부터 하나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많이 변했고 더이상 이전의 것들이 나에게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을 올해 들어 참 많이 했는데 이런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한동안 변화가 두려웠고 지나간 것들이 그리웠고 어떻게든 과거의 흔적을 잡아 보려 애썼었는데 요즘은 대체 어디까지가 나인지, 그런 질문들이 쉬이 의미를 잃고 그저 반짝이는 오늘이 더 눈에 걸릴 뿐이다.

이 이야기를 사랑하는 수만 가지 이유 중 하나를, 영화를 보고 나니 알겠다. 이건 결코 로맨스 장르가 아니다, 동시에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근에 본 해피엔드가 코우와 유타의 이야기가 아니라 코우와 유타와 아타와 밍과 톰과 후미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이것 또한 찰리, 찰리가 사랑한 패트릭과 샘과 누나와 선생님과 그 모든 사람들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한 이야기이다. 내가 사람을,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 찰리와 비슷한 것도 같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가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에 걸쳐 너무 많이 녹아 있어서 마음이 터질 것만 같다.

그러니까 나는 이곳을 잊지 못한다. 터널의 주황 불빛과 밤공기와 아득한 기억 속의 찬란한 노래를


평생을 이런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을까, 지독히도 울렁이는 심장을 부여잡고 당장 몇 시간 뒤에 삶이 끝날 것처럼 그렇게 영원할 수 있을까


어떤 감정은 글자로 표현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