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내면 아이
꿈에서 너를 만났어
작은 손으로 제 몸만 한 쓰레기통을 쓱쓱 문지르며
"엄마가 좋아하겠지?" 하는 눈빛으로 빛나던 아이.
고작 다섯 살이었던 너는 엄마의 눈에 들고 싶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고 있었지.
엄마는 막내를 갓 낳고
하루 종일 젖은 기저귀를 삶고 헹구고,
무거운 빨랫감을 들고 나르는 데 지쳐 있었어.
어린 너는 그걸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한숨과
젖은 기저귀를 짜는 엄마의 손을 보며
어렴풋이 느꼈을 거야.
엄마의 한숨이 커지면 마음이 콩닥거리고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면 두려움에 움츠리는 너의 작은 어깨의 떨림을
엄마의 손에 회초리가 들리는 순간에
터지는 억울함이 어른이 되어서도 잊히지 않는 것은
아직 내가 내 안의 어린아이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제 내가 말해줄 게. 위로해 줄게
더 이상 엄마 마음에 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너를 움츠리게 만드는 것은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없다고.
너를 때려줄 사람은 더 이상 없으니
이제 그만 마음의 불안을 내려놓으라고.
엄마가 화내지 않게 해 달라고 서둘러 어지러 놓은 물건들을 치우며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내내 마음속으로 " 하나님, 엄마가 화내지 않게 해 주세요. 엄마에게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하나님 말씀 잘 들을게요.."라고 간절히 기도 했던 그때의 내 나이는 고작 8살이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 걸까? 그날 나는 엄마에게 혼이 나지 않았다. 엄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원인은 모르겠고 간절했던 그 마음만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았다.
나는 엄마에게 초등 저학년 이후에 맞은 기억이 한 번도 없었다.
아빠에게는 평생 손찌검을 당해 본 적이 없었다. 아빠는 늘 우리 삼 남매를 앉혀놓고 훈계를 하셨다.
늘 두 시간 정도를 잔잔한 톤으로 당신의 힘든 시절부터 현재까지 삶의 이야기하시며 늘 정직과 성실을 강조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담임선생님은 내게 우등상을 주지 않았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못 받는 거라 생각했는데 담임은 엄마에게 내가 친구들과 무리 지어 어울려 다녀서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상담 때 엄마가 담임에게 보낸 선물이며 돈봉투가 아깝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 후로 나는 학교에 엄마가 오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심지어 고3 때도 대학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담임을 못 만나게 했다.
엄마는 봉투나 선물을 보내려고 애썼지만 나는 선생들에게 들이는 공이 싫었다.
그 시절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하나같이 봉투 받은 아이들을 편애하는 사람과 공부 잘하는 아이를 편애하는 사람. 두 부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인복은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학교 대표로 문예부 차창 k와 함께 백일장에 나가게 되었다.
수업을 빼고 다녀오는 일이라 신나서 들떴는데 미술과목인 담임선생님은 "학교 빠지는 대신 상 타와라"하셨다. 워낙 말수도 없고 조용하고 소심했던 나는 싱긋 웃고 말았는데 그 백일장에서 운이 좋게 '차상'이라는 상을 타게 되었다. 친구들 박수를 받으며 받아온 상장은 집에 돌아와 가방에서 꺼내놓은 순간부터 한낱 종이장에 불과했다. 엄마도 아빠도 형제들도 내게 잘했다거나 축하한다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아빠는 오로지 우등상만을 1등으로 생각했고 그 외 모든상들은 종이쪼가리였다.
그때 내 주변에 누군가가 나의 재능을 알아 봐 줬다면 어땠을까?
누군가가 내게 자신감을 갖으라고 칭찬 한마디라도 해 줬다면 어땠을까?
현재의 삶이 달라졌을까?
어른이 되어서도 왜 이렇게 인정에 배가 고픈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애를 쓰고 산 세월이 반백년인데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도 내게 잔인할까?
어떤 날은 사람들이 내게 다 화가 나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어떤 잘못을 한 걸까? 나는 늘 묵묵히 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왜 내게 화를 내는 걸까?
마음이 온통 멍들어 아픔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몹시 힘이 든 날에는
다음 생에 태어나면 덜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안의 어린아이는 반백 년이 지나도록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불안이 스멀대고 누군가의 인정이 고파질 때면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내 안의 다섯 살 내면아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다독여줘야 한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