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도전의 끝엔 왜 눈물이 날까 ①

by 이혀갲

무한도전에서 여러 도전 특집들을 진행했다. 봅슬레이, 조정, 레슬링... 굵직한 특집들이 있었는데 이 장기 특집들의 시작점이 댄스 스포츠 특집이다. 80일의 준비 과정 끝에 댄스 스포츠 대회에 나간 멤버들은 파트너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특집을 시작할 때는 '예능 프로그램이니까' 하는 생각에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였던 이들이다. 그러다 대회장 대기실에서 긴장감에 어쩔 줄 모르는 모습들이 보였고, 대회를 마친 뒤 스태프와 동료들이 "고생했다" 박수치고 환호하자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 이들이다. (박명수는 울지 않았다.)


"졌지만 잘 싸웠다"처럼 과정을 빛내는 말들이 있다. 그런데 '어디까지 도달해야 성공이다'를 상정하지 않았다면, 노력의 정도를 어떻게 스스로 평가해야 할까. 무한도전의 댄스 스포츠 특집에서 이들이 대회 우승을 도달점으로 생각하진 않았을 거라 아쉬움의 눈물은 어디서부터 나왔다고 봐야할까.


타인에게 의지하는 게 나약한 자신을 의미하는 것만 같았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울지 않듯, 우선 스스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는 정신과 의지를 갖춘 후 심적으로 평온한 상태를 이룩할 줄 아는 게 어른이라 배웠다. 남에게 기대는 것은 결국 스스로 이겨 낼 기회를 한 번 미루는 것이기에 타인에게 의지한다는 게 긍정적인 의미 다가오진 않았다.


노력이란 관점에서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노력을 할 줄 아는 게 더 가치 있어 보이는 것도, 그 생각의 연장선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 이성을 갖춘 인간이 이룩해야 할 결과물처럼 여기며 커왔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그렇게 가치가 없을까. 댄스 스포츠 특집에서 냉정하게 무도 멤버들은 자신보다 시청자에게, 스태프와 파트너에게 노력의 기준을 세운 것에 가깝다. 연예인이 개인 스케줄을 조정해가며 이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수준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해, 스스로에게 용납할 수 있는 연습량을 채우며 준비했을 대회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들이 노력해 도달한 수준을 그대로 대회에서도 보이자는 개인적인, 인간적인 욕심이 생겼을 수 있다. 떨리는 긴장감을 견디고 무대에서 자신들의 노력의 과정을 쏟아냈고 무대에서 나오며 그 순간들을 차례로 복기했을 터다. 그리고 찾아오는 아쉬움.


아쉬움 속에는 미안함이 가득해 보였다. 정형돈은 대회를 마치고 파트너에게 곧바로 '미안하다' 했다. 가장 멤버들 중에 잘한 사람인 그다.


자신의 한계 극복이 도전의 목표겠지만 때로는 타인의 기대가 들어오는 도전도 있기 마련이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는 바둑에서 실패한 그를 바로 세운다는 스스로의 목표도 원 인터내셔널에서의 생활에 영향을 미쳤겠지만, 한켠으론 실패한 장그래라하더라도 그를 당신의 자부심으로 여기는 어머니를 위한 도전이기도 했다. '더할 나위 없었다'는 평가에도 정규직 전환이 안 됐을 때 그가 흘린 눈물에는 어쩌면 타인을 향한 죄책감이 작용했을 수 있다.


내 자아가 성숙했다면, 노력의 정도를 평가하는데 내 주관이 강력히 또 객관적으로 개입했을 거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내 도전의 곳곳에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책임을 씌웠고, 실패의 아픔을 그 책임감에 맞물리게 해왔다. 그런데 무도 멤버들의 눈물이 온전히 자신의 노력에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봐도 밉지 않은 걸 느낄 때, 조금 더 도전에 타인을 향한 책임을 얹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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