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저는 펀딩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이름으로 책임지는 일

by 지은
이 제품을 펀딩으로 론칭하고 싶은데,
지은씨가 맡아주면 안 될까요?



2025년 1월 말, 지인의 소개로 한 뷰티 브랜드 대표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신제품을 와디즈 펀딩으로 론칭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일단 제품부터 살펴봤다. 요즘 뷰티업계에서 자주 보이는 PDRN 세럼.

하지만 이 제품은 조금 달랐다. 원료를 직접 개발한 연구소에서 만든 제품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기획된 상품 그 이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다듬으면 시장에서 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대표님도 제품에는 자신 있어 하셨지만 펀딩은 처음이라 막막해 보이셨다. B2B만 해오신 분이라, B2C는 익숙하지 않다고 하셨다. 그래서일까. 그분이 내게 부탁한 건 단순한 기획이나 컨설팅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펀딩 운영 전체를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나는 펀딩을 해본 적이 없었다. 광고를 집행해본 적도, 리워드를 설계해본 적도 없었다. 프로젝트를 통째로 맡는다는 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내게 대표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시범 삼아 해보는 거예요~”

그 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좋습니다. 해볼게요."


그 순간부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맡는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위험이겠지만 나에게는 가능성이었다. 해봤기 때문에 피하는 게 아니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부딪혀보고 싶은 일.


그동안 프리랜서로 해온 일들은, 대부분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IR 자료, 사업제안서, 회사 소개서 같은 문서들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걸 정리해 전달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판단은 늘 그들의 몫이었고, 결과도 그들이 가져갔다. 잘 만든 자료들도 대부분 대외비였고,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다. 가끔은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도 잊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제품 하나만 덜렁 있었고, 그걸 어떻게 알리고, 어떻게 설득하고, 어디까지 보여줄지 모든 걸 내가 정해야 했다. 손닿지 않은 부분이 없을 만큼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오로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일이었다.


제품 분석부터 시작했다. 성분과 제형, 용량, 원료사, 경쟁사, 타깃, 포지셔닝까지 하나하나 정리했다. 분석하고 구조를 짜는 일은 익숙했지만, 이번엔 그 결과에 대해 온전히 내가 책임지는 위치였다. 누구의 이름도 아닌, 내 전략으로 설계된 프로젝트. 기획자는 결국 결과까지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번엔 정말, 그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기분이었다.


두려움은 있었지만, 이상하게 겁이 나진 않았다. 혼자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외롭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내 방식으로 해볼 수 있다는 게 기쁘고 설레는 일이었다. 여러 감정이 겹쳐 있었고, 그걸 다 말로 설명하긴 어려웠다.


다만 하나는 분명했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주어진 일을 정리하는 사람에서 내 감각으로 흐름을 설계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는. 더 늦기 전에, 내 이름을 걸어도 괜찮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결과는 알 수 없었다. 잘 될 수도 있고, 말아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경우의 수 안에서 하나만은 분명했다. 이번엔 내가, 진짜 기획자로서 시작하는 시간이라는 것.


/

저는 펀딩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만,
해보니까 죽지는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