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지 못하는 걸 봐주는 사람
마케터가 필요하다는 건 금세 느껴졌다. 전략을 세우는 건 익숙했지만, 그걸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브랜드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언어에 반응하는지를 짚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Y였다.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15년 가까이 알아온 친구. 같이 일한 적은 없었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것 같은 사람.
Y는 직장인이었는데,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을 쪼개 이 프로젝트를 함께해줬다. 내가 처음에 부탁한 건 광고뿐이었지만, 진행하다보니 그 외의 부분까지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주었다. (얼마나 든든한지..)
내가 만든 전략과 문장을 같이 들여다보며 “소비자 입장에선 이건 어때?”라고 묻는 사람. 그 한마디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나는 판매자의 언어에 익숙했고, Y는 소비자의 언어를 알고 있었다. 그 차이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특히 내가 만든 문장을 읽고 “이건 브랜드가 자기 얘기만 하고 있어”라고 말했을 때, 서운하기보다는 오히려 멈춰서게 됐다. 전략과 마음은 충분했지만, 방향이 조금씩 틀어지는 순간. 그걸 대신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꽤 큰 안도였다.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넘지 않으면서도, 이 프로젝트를 함께 만든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모든 걸 혼자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쉽게 갇히게 된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내가 잘하지 못하는 영역을 가장 잘하는 사람에게 맡긴 일이었다.
혼자 다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감각. 기획자에게 더 필요한 능력은, 어쩌면 그게 아닐까.
내가 모든 걸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했을 때, 일도 관계도 훨씬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