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려고 애썼던 나에게
나는 언제나 이해를 하려고 애썼다.
이해는 나에게 습관 같이 굳어 있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하던 삶 속에서도,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간 속에서도,
결혼 후 맞닥뜨린 새로웠던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모든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다.
갈등을 싫어했던 나는,
불편함을 싫어했던 나는,
그저 모든 것을 이해하고 거기서 멈추길 원했다.
나는 이해와 오해의 사이에서
이해만을 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면
오해가 생기지 않을거란 생각을 했던걸까?
나는 오해라는 감정을 무서워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다해도 오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이해는
더 쉽게 오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나는 항상 나 이전에 타인을 먼저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는걸 당연시했다.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채 했었다.
이제는
이해하기와 오해하기는 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택을 내 스스로가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이해와 오해의 감정조각을 줍게 된다면
이제 나는 전처럼 억지로 가지고 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지나쳐보기도 하고,
혹시나 궁금해서 만졌다할지라도
그냥 그 자리에 놓아보는 연습을, 이제는 해보려 한다.
오해가 나쁜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해든 오해든 그것은 그냥 하나의 감정이다.
그 감정을 어떻게 느끼고 선택하느냐는
그 사람에게 달려있는 거니까.
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이제 나는 오해의 감정이 무섭지 않아졌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해받아도, 나를 이해하는 내가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