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 ...
어린 시절부터 안경을 썼습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였을 겁니다. 안경과 함께 한 시간이 꽤 깊습니다. 그래서 안경은 내 몸의 일부와 같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몸의 일부 같았던 안경이 너무 낯설어졌습니다. 늘 내 시력에 잘 맞게 안경을 맞추곤 했는데 이제 그렇게 딱맞게 안경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노안이 온 것이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여러모로 삶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는 시그널 입니다. 보는 것도 먹는 것도 입는 것도… … 먹는 입맛도 변하고, 치아가 약해지기도 하고, 예전 같지 않은 몸뚱이가 되어 핏좋은 옷보다 펑퍼짐한 옷을 선호하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여러모로 삶이 불편해진다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여러가지 불편해지는 것 중에서 역시 보는 것이 불편해지는 게 가장 서럽게 느껴집니다. 멀리 있는 것도 잘 안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도 잘 안보이는 노안… …
이제 안경을 맞추려면 양자택일을 해야합니다. 멀리 있는 사물을 잘 보이게 맞출 것인가, 아니면 가까이 있는 것을 잘 보이게 맞출 것인가 말입니다. 처음엔 운전을 자주하니 멀리 있는 사물을 잘 보이게 안경을 맞췄습니다. 그래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할 때는 늘 안경을 머리 위로 추켜 올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한 1-2년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 익숙해지기도 한데 여전히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가까이 있는 사물을 잘 보이게 맞췄습니다. 노트북으로 일을 할 때도 책을 볼 때도 스마트폰을 보거나 손목시계를 볼 때도 이제 안경을 안벗어도 됩니다. 근데, 운전할 때나 거리를 걸을 때는 여전히 멀리 있는 사물이 잘 안보입니다. 그래서 안경을 두개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생각을 했지요.
‘이럴 거면 가까이 있는 사물이 잘 보이는 안경은 필요가 없었네. 바보같이 … …’
네, 맞습니다. 그냥 가까이 있는 사물은 안경을 벗고 보면 되는데 안경과 함께 한 시간이 꽤 깊어 왠지 이것도 안경을 써야할 것 같은 편견이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여러모로 삶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익숙한 것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고 새롭게 변해가는 내 몸과 마음에 하나 둘 다시 맞춰가야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듯 내 일상의 모습도 조금씩 변해가겠지요.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새로운 낯선 시작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안경 하나 맞추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쉽지 않은 일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나이가 든다는 시그널이겠지요. 노안이 온 눈에 맞춰 안경을 두개씩 들고 다니듯 나이가 든다는 것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