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에게 전화를 걸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나는 ENFP니까

by 도로시

<그날의 기분>


그날은 사실 아주 평범하게 시작된 하루였다. 평소 루틴대로 새벽 6시 일어나 책 좀 읽고 명상하고 맨발 걷기 후 출근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콜센터에서 일하는 일잘러로 잘 움직이다가

갑자기 고객의 응대가 못마땅해진 순간

이런 가라앉은 기분을 어떻게 풀까 하다가

엉뚱한 짓을 하게 된다.

그날은 뭔가 강렬한 한 방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의 전두엽을 자극했고 나는 ENFP 답게 오래 고민해 온 한 사람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는 게 아니라 꾹 눌렀다. 눌러버리고 말았다.

전화연결음이 몇 번 반복된 후

"여보세요"하는 목소리에 흠칫하다가

"여보세요? 혹시 제가 전화를 잘못 걸었다면 아닐 수도 있는데

000 씨 되세요?"

"맞습니다."

허걱!

맞다니 25년 만에 듣는 목소리는 너무 낯설어서인지 전화를 하긴 했어도 아니길 바란건지...


그렇게 첫사랑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25년 만의 통화라기엔 너무 자연스럽게 대화는 이어지고 나는 그의 딸 이름을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아이 안부도 묻고 그가 건강을 위해 댄스와 배드민턴을 한다는 것. 너도 운동해라 등등

이야기를 듣다가

"너는 여전히 재수 없구나. 잘난 척은! 네 휴대폰 번호나 불러봐라"

"어? 그건 좀 곤란한데..."

"내가 네 번호 정도도 못 받을 만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가?"


이렇게 반협박으로 전화번호를 받게 된 나는

빠르게 저장을 하고(내가 건 번호는 듀얼폰 번호여서 혹시나 그의 사무실 전화기에 내 번호가 저장되더라도 듀얼번호를 없애면 그만이니까)

"잊을만하면 전화 함 할게."

하고 끊었다.


오후 4시 퇴근 후 원래 본업인 논술선생님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책을 읽고 글쓰기도 하고 첨삭까지 완벽하게 해 주고 사진을 찍어 학부모님께 전송까지 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X가 000 일을 하더라."

무슨 사촌 동생 안부 전하듯 무심하게 말했다.

남편도 그냥 자연스럽게 "그래?"

이렇게 넘어갔다.


남편은 상당히 배려심 많고 내성적인 사람이라

속으로 "저 사람 왜 저래?"싶어도 좀 심하게 말하면

"저게 미칫나?" 싶어도 그냥 넘어가 주는 INFJ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부부는 방문학습지 교사로 일하던 27세 25세 나이에 만나게 되는데 나는 그 당시 해외 어학연수중이던 , 6년 차 남자 친구 X에게 질려 가고 있던 참이라 (국제전화를 시도때도 없이 수신자부담으로 걸어 월80만원씩 데이콤에 기부를 하게했다) 유난히 재치 있고 잘생긴 남편에게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고 적고 싶다.


(남편과 X, 나의 삼각관계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한다.)


X와 남편의 차이점이자 남편의 장점을 나열하자면

100가지쯤 되는데 10가지만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나의 말을 잘 들어준다.

2. 내가 뜬금없이 뭔가를 요구해도 다 들어준다.

3. 데이트비용을 다 낸다.(×는 내가 90퍼센트 냈다)

4. 나를 엄청 아껴준다.

5. 재미있다. 유머가 넘친다.

6. 잘생겼다.(X는 스마트하게 생겼다.)

7. 생각이 통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 "저기서 돌아봐야지"

"손을 흔들어줘라 좀" 이런 식으로 똑같이 말할 때가 많다.

8. 윗사람에게 깍듯하다.

9. 잘 웃는다

10. 손이 따뜻하다. 손을 잘 잡아준다.


이러니 아무리 6년 차 애인이 있어도 군대 갔을 때도 바꿔 신지 않은 고무신을 직장 생활하며 바꿔 신을수밖에...라고 이해해 주시길!


아무튼 이해심 많은 남편은 여전히 나를 사랑해 주고

그 에피소드조차 그렇게 고요히 잘 지나갔다.


이만하면 내 입장에선 결혼을 잘한 셈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