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재밌는 일 없나?

앵무새를 입양했어

by 도로시

"여보, 사는 게 좀 재밌으면 좋겠다."

매년 11월부터 2월까지 사는 게 참 힘이 든다. 아니 힘이 들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계절성 우울'에 시달려 좋아하는 모든 일이 시들해지고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는 거 , (평소 미라클 모닝이 되던 나인데) 밥 먹는 일, 세수하고 머리 감는 일조차 귀찮고 1월쯤 되면 살아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싫어지는 과정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병원진료도 오래 받고 심리상담도 여러 선생님께 주기적으로 받아봤지만 1도 해결되지 않아 태국이나 필리핀 가서 살아야 하나 고민도 했다.(더운 나라 중 가본 곳만 생각나서)


올해도 11월은 온다. 겁이 났다. 또 만사가 싫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먼저 지금 나에게 가장 재미있는 일이 무엇일까? 떠올려보았다. ENFP여자의 추구미는 '즐거움'이다. 인생사 백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남들이 뭐라 해도 내가 재미있으면 되고 그 재미있는 일 한 가지로 나머지 아흔아홉까지 힘들고 어려운 인생사를 긍정적 사고로 특유의 텐션으로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첫아이 임신 6개월 차에도 감기로 열이 38도까지 올랐어도 "남편이 잘하고 있다. 고맙다"해주는 바람에 시아버님 제사 준비를 하루 종일 하고 새벽 2시까지 뒷정리까지 다 돕고도 생강차와 유자차로 잘 이겨낸 사람이 나라는 사실.


추석연휴에 앵무새를 입양한 친정아버지 덕분에 앵무새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애교가 많은지를 알게 되었다. 앵무새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를 찾고 있었다. 유튜브로도 앵무새 집사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어떤 아이가 더 이쁜가 눈여겨봐 오던 참이다.


토요일 아침, 정확히는 새벽 6시 20분 앵무새카페에

알록달록 깃털색상마저 예쁜 코뉴어를 분양한다는 글이 떴다. '사랑으로 키워주실 분 찾아요'

사랑하면 또 나지! 누가 먼저 댓글을 달까 봐 얼른 저요! 하고 손을 들었다. 부산에서 창원까지 데려다주시겠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게 '망고'가 우리 집 막내가 되었다. 망고에게도 아빠 엄마, 누나 셋이 생긴 것이다. 음하하.


오후 2시, 과외를 하고 돌아온 남편은 내 어깨에 올라앉은 '망고'를 보고 "여보!"한마디만 했다.

집안 대청소를 하고 내년 상반기즈음 앵무새를 데려온다는 나의 계획을 온 가족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는데 ENFP 답게 즉흥적으로 , 판단력은 잠시 뒷주머니에 숨카놓고(경상도 사투리. 숨겨놓고란 뜻) 추진력만 앞세워 일을 벌인 것이다.


다행히 '망고'는 나를 한 시도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새장은 너나 가져'를 표방하며 입양 첫날부터 나의 검지를 시작으로 손등에서 어깨까지, 다시 어깨에서 등을 지나 팔뚝 손등까지 껌딱지처럼 붙어 안 떨어진다. 몸무게 겨우 100g인 녀석이 몸무게 6600g인 나를 지배하고 있다. 먹이는 얼마나 잘 먹는지. 무화과, 샤인머스캣까지 별식으로 다 챙겨 먹고 먹은 지 30분 내로 또 소화를 시키고는 바닥에 표시를 잘한다. 살균물티슈를 들고 다니며 바로바로 닦아내고 거실 바닥청소만 하루에 다섯 번은 하게 된다. 좋아하는 SNS를 할 시간이 없을 만큼 앵무새에게 집중하고 있다. 그에따라 나의 '청소력'은 상승중이고.


"여보, 새벽에 필사하는데 볼펜 위에 올라앉아 있었어."

부리로 볼펜 뚜껑을 쪼아대며 노는 '망고'때문에 나의 루틴이 짧게 끝났다. 매일 아침 1시간은 책 읽고 필사를 하는데 그마저 쉽지가 않다. 마음에 와닿은 내용을 따라 적다가 한 페이지를 못 채우고 '소리 내어 읽기'로 대신했다.


온라인 주문한 새장이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바빠졌다. 조립해서 새장을 세우고 횃대 끼워놓고 장난감도 넣어주고 망고에게 집중해 있는 나 대신 집안일을 해준다. 세탁기 돌리고 설거지하고 빨래 널고 개기, 안방 청소, 책장정리 등등 일이 두 배는 더 많아진 남편. 늘 이렇다. 재미있는 건 내가 차지하고 뒷수습은 남편이 다 한다.

"사랑해 여보. 고마워."

앞치마를 벗을 시간이 없는 남편을 등뒤에서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한마디 더 했다.

"여보는 좋겠다. 마누라가 예뻐서."

(왜 예쁜지는 다음 편에서)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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