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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문하는 임정아 Nov 09. 2023

딸아이와 대화하기

셋 낳길 잘했다



밤 10시 5분 도서관이 문 닫는 시간
막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여고 1학년이다. 야자 끝나고 도서관에서 또 1시간 공부하고 집으로 온다.)

"엄마, 뭐 해?"
"음... 책 읽지."
"엄만 책 왜 읽어?(왜 그렇게 많이 읽어?)
"어른답게 말하고 쓰고 싶어서."
"지금도 어른답게 할 수 있지 않아?"
"세월이 갈수록 나의 언어가 듣는 사람을 편하게 했으면 좋겠거든.
내가 말했는데 상대방이 '뭐라고?' 하고 되묻지 않게. 쉽고 고운 말로 맛있게 말하고 싶어서."

"엄마는 삶이 뭐라고 생각해?"
"봄여름가을겨울"
"왜?"
(10초간 머릿속으로 나의 52년 인생이
복기되었다.)
"봄은 꽃피어 좋았고 여름은 쨍한 햇빛과 바다가 좋더라."
(근데 봄이 오기 전 꽃샘추위도 겪어야만 했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너 독서논술 초1부터 한 아이 맞는구나 ㅋㅋ)

막내가 집으로 오는 20여분 우리의 통화는 계속되었다.
그러고도 아쉬워
자기 방을 연 아이는 1시간 30분 엄마와 대화를 즐겼다.

참 행복한 밤이다.
한 번의 떠남을 선택했던
딸은
매일 엄마에게 애틋하고
따스하고
그러다
한 번씩 차갑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뜬금없는 질문이 좋다. 반갑다.


여기까지 오느라 너도 나도 참 애썼다.

사랑하는 지인아, 너의 첫울음을 기억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 넌 뱃속에서부터 예뻤거든. 3D초음파라고 너의 눈매와 오뚝한 콧날까지 다 가늠할 수 있는 사진을 들고 참 예쁜 아이가 내게 왔구나. 하고 감사했지.

너의 첫걸음마는 또 어떻고? 아장아장 걸어 엄마에게 올 때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어.


네가 세 돌 지났을 때였지.(네가 기억한다기에 더 놀라운.) 산책을 나간 길에서 조그만 다리 위 설치된 난간틈에 네가 얼굴을 밀어 넣고는 거기 개울을 보다가 얼굴이 끼어서 이모랑 엄마는 그것조차 귀여워 깔깔거렸는데 넌 당황한 얼굴로 낑낑거리면서도 울지 않더라.

엄마가 네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 겨우 자세를 잡아주자 스스로 빠져나왔지. 넌 그런 아이란다. 고난이 와도 주저앉지 않고 맞서 이겨내는 아이.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고자 하는 아이.

그래서 네 걱정은 하지 않을게.


우리 잠시 서로 미워하고 이별해 있었지만 이제 서로 응원하고 마음껏 사랑하자.  네가 엄마의 막내로 와줘서 감사하고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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