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가
중학교 시절이었을 거다. 조디 포스터와 매튜 매커너히가 나오는 영화 컨택트를 보고 마무리의 장면들이 굉장히 촌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감동 받았던 기억이 있었다. 아마 그 내용은 인터스텔라와 같은 기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부녀의 정. SF영화들 중에서 전쟁이 아닌 화합과 소통을 그리는 내용에서는 확실히 여자 주인공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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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콘택트가 다시 개봉한다는 얘길 보고 재개봉을 하나 했는데 주인공과 포스터가 아예 달랐다. 에이미 아담스가 나오고, 콘택트 렌즈같은 모양을 한 우주선이 멀뚱어니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직전 한국 포스터를 보니, 두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길래 '아, 두 남녀의 멜로사랑이야기가 주된 주제인가?'라고 깜빡 속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원제를 컨택트로 바꾼 부분에 대해서 비판적 코멘트가 많았다. 나 역시 동의한다. 영화를 봤음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제목을 저렇게 바꿔버렸다고밖에 짐작이 안 된다. 그러나 외계인이 나오고, 어쨌든 접촉으로 인해 새로움이 생겨나는 부분에 대해 인정한다면 예술적 감성을 고려하여 그 정도는 이해하겠으나 더 이해가 안 되는건, 저 중간에 떡하니 껴안고 있는 남녀의 포옹이라니! 저 그림은 영화의 의미를 희석해 버린다. (이전에 씬씨티가 비슷한 광고로 영화를 잘못 홍보한 적이 있었다.)
어쨌든 덕분에 두 사람이 사랑을 할 것이라는 부분이 예상이 됐고, 중간 제레미 아저씨의 아재다운 플로팅 등을 보면서 저런데도 넘어간단 말이야?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심지어 집에서 보는 바람에 게임하면서 보느냐고 처음엔 몰입을 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정, 세부적인 장치보다도 그것이 주는 '함의'에 집중하는 나로써 막판에는 너무 감동을 받게 되었다. 영화가 아닌, 마치 한 편의 마스터피스를 본 듯한 느낌은 매우 거대한 잔상을 남겼다.
영화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모녀의 정이었네 이번에는. 하지만 어렸던 딸은 청소년기 시절에 병으로 인해 죽어 버리고, 그 이후 약간은 무력해보이는 언어학자인 엄마의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전세계 12개국가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불시착한? 떨어진? 외계비행물체. 지구방위대는 그것을 '셀'이라고 부르며 각 국가에서 접촉을 통한 연구를 시작한다. 산스크리트어의 '전쟁'이라는 의미를 표현하는 루이스 박사의 모습은 감독의 관점을 정확히 설명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감독은 그것을 루이스 박사를 통해 보여주며, 중국이나 러시아, 그리고 그 군대령과 미국 정부는 일찍이 그녀와는 다른 '전쟁'의 정의를 내린, 감독과는 대조적인 이름만 나온 언어학자의 시점으로 외계인을 대하려고 한다. 관객조차도 그 중간에서 혼란을 느끼면서 각자의 시점으로 외계인을 바라보게 되고 이것이 이 영화가 우리를 휘어감아 들어가는 큰 틀이 된다.
단어로 시작하게 된 옹알이는 점차 문장이 되었고, 먹물처럼 내뿜는 그들의 언어를 하나 둘 씩 이해해가기 시작하면서 의사소통이 되었다. 지속되는 의사소통 가운데 루이스 박사는 딸과의 일을 계속 본다. 기억이기도 하면서, 미래이기도 한 단편적인 장면들은 루이스의 꿈 속에, 환상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정부는 루이스 박사에게 목적을 알아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날 수 밖에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강조하며 계속적인 성과를 요청한다. 그러나 정부의 그 과정 가운데는 마작의 패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승과 패만의 상황으로 의사소통을 지속하는 중국, 어떠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과학자를 죽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 러시아와 미지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성을 상실해 가는 외부 일반인 등 다양한 환경들이 놓여져 있다. 나의 의도대로 상대의 의사를 이해하는 의사소통의 방법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외계인과의 전쟁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오게 되지만 그것이 그들의 정확한 의도가 아님을 직감하는 루이스는 마지막 대화의 초청에 응답한다.
'셀'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직전, 외계인 코스텔로는 루이스를 불러 언어를 이해하게 된 것을 확인한다. 인간이 '무기'로 오해했던 것은 선물이었으며, 그 선물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루이스가 된 것이다. 딸의 죽음을 어렴풋이 목격하고 있던 루이스는 외계인에게도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동시에 과정임을 알게 된다.
이후 중국 장군과의 통화 등을 통해 세계를 전쟁에서 구해내는 활약도 보이게 되면서 언어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흐름은 외계인이 내뿜는 먹물 언어의 흐름과 같이 이루어진다. 일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 이루어져
외계인은 우리에게 언어를 선물하고 가지만, 그들은 우리와 같은 문화동일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책에서도 루이스 박사는 그 두 가지의 문화와 언어 구조가 혼합된 본인이 교집합 쯤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이 나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이런 언어의 구조를 이해하게 되고 시계열의 새로움을 받아들인 루이스가 자신의 미래와 소통하게 되었을 때
그 선택을 받아들이게 되는 그 담담함 때문이다. 이별과 죽음, 삶에 있어서 쉽지 않은 결과들을 그녀는 끝나는 순간 다시 시작해 나간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의 자유의지는 어디로 뻗어나갔을까, 과연 외계인들은 신처럼 세계를 보는 것일까, 이미 미래를 알고 약속하며
왜 그렇게 됐냐는 결론에 그것은 너의 선택이었다라고 답하는, 우리가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시 삶을 살아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말하는 하나님처럼.
지구 반대편과도 마치 옆에 있는 냥 통화를 하는 기술을 가졌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미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