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가정이라면 사립초를 강력 추천하길래 입학만 하면 아이가 저절로 잘 다니게 되는 줄로만 알았다.
일하는 중이라 당연히 대면 사립초 입학설명회는 참석할 수 없었고 시간에 맞춰 선착순 신청을 해야 하는 온라인 설명회 또한 초대 링크하나 받기가 어려웠다. 딱 한 군데만 녹화영상을 너튜브에 올려줘 그걸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사실 집 바로 앞에 있는 G학교가 목표였으나 코로나 이후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귀동냥으로 들어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가 알려준 5군데 학교 이름을 메모장에 써뒀다가 그곳에 고스란히 넣었다. 11월 22일 추첨이 시작됐고 듣던 대로 4군데는 광탈했고 운 좋게도 동영상으로 우연히 본 H학교에 뽑혔다. 각각 3만 원씩 전형료가 들어갔으니, 15만 원을 써서 겨우 붙은 거나 다름없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함께 사립초에 썼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낙첨이라, 일단 조용히 마음을 쓸어내렸다.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아이들은 모두 아파트 단지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있는 공립초에 갔다. 모두 같은 날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어린이집이 텅 비던 날, 하원 후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엄마, 나도 집 앞 학교에 가고 싶어, 친구들이랑 같은 학교에 다니면 안 돼?"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네가 가는 학교에 엄청 좋은 선생님들이 계시데, 분명 마음에 들 거야 거기 가면 어린이집 친구들처럼 좋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라며 나도 알 수 없는 거짓부렁을 했다. 마치 청약처럼 평균 10:1의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당첨됐으니 그냥 포기하기는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정보력과 기동력이 없는 내가 어떻게 방과 후 학원 뺑뺑이를 운영할 수 있을지 이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렇다. 사립초를 결정한 배경에는 아이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일하고 있는 시간에 어딘가 믿을 만한 곳에 오래 맡길 수 있어서다. 솔직히 아이 입장을 고려한 결정은 아니었다
난 워킹맘이니까, 아이가 돌봄 교실까지 다하고 늦게 하교하는 게 당연하다 여겼다. 어린이집도 5시까지 잘 해냈으니, 이번에도 잘해줄 거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아침 8시 5분에 스쿨버스를 타야 해서 새벽 7시에 기상하니 아이는 1주일이 채 안돼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특히 4교시까지만 있는 수요일이 제일 좋다고 표현했다. 금요일 아침이면, 마치 직장인들 마냥 내일 주말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오며 가며 길에서 가끔 이웃들을 마주치면 '1호의 얼굴이 많이 어둡네요.'라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등교한 지 한 달 만에 아이가 '엄마 돌봄 교실에서 문제 푸는데 뇌가 뜨거워졌어'라고 고백을 해서 심장이 쿵 떨어졌다. 이내 괜찮아질 거라 여기며 아이를 달래 학교를 보내길 여러 번 선생님께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1호의 어두운 표정과 하교 이후 짜증 섞인 말투를 깨닫기 시작한 것도 이 문자를 받은 날부터였다.
"오늘 머리가 많이 아팠어? 코로나 재감염 인가?" 라며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지만 속으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호는 다른 곳을 응시하며
"엄마, 다른 친구들은 선생님께 부탁해서 아프다고 하면 부모님이 데리러 오더라~"라고 무심히 답했다.
아, 내가 와주길 바랬었구나. 짐짓 모른척하며
"어머, 지난번에 코로나 감염된 거 알고 엄마가 쏜살같이 달려가서 데려왔잖아 기억 안 나?" 하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리고 자주 안아달라고 요구했다. 새벽에 내가 깨어있으면 "엄마, 꼭 안아줘 같이 자고 싶어" 했다.
'꼭 안아주기' 생각해보면 엄청 간단하고 쉬운 사랑 표현인데 귀찮아했던 마음을 굳이 변명하자면 나는 아침에 할 일이 참 많았다. 어제 다 못 끝낸 업무를 빠르게 체크하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건조된 세탁물을 꺼내 개켜놔야 했다. 1호의 그런 말이 지쳐있는 자신에게 사랑 표현으로 격려해달라는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1호가 학교에 가고 난부터 부쩍 관심을 더 원하는 2호에게 조차 눈길을 줄 수 없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엄마 아침에 할 일이 진짜 많아. 미안하지만 아직 이르니까 더 자도록 해" 했지만 1호는 눈을 감지 않고 끝까지 내가 오길 버텼다. 그럼 난 그제야 급한 불을 겨우 끄고, 마지못해 침대에 엎드린 아이의 엉덩이만 두어 번 토닥토닥해주고 안방을 나왔다.
제일 싫어하는 과목은 연달아 수업하는 영어와 영어로 진행하는 플레이팩토라고 했다.
제일 좋아하는 날은 4교시만 하는 수요일인데 하필 싫어하는 피아노가 수요일 방과 후 교실에 있어 피아노 좀 취소해달라고 여러 번 호소했다. 하지만 이미 등록금을 지불한 걸 어쩌겠냐며, 일주일에 딱 한 번이니 한 학기만 다녀보자고 설득을 빙자한 강요를 했다. 정말이지 사립초 등록금은 진심 비싸서 돈을 다 지불하고 중간에 관두게 하는 짓은 용납이 잘 되지 않았다.
그날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일할게 산더미인데 계속 '엄마', '엄마' 불러젖혔다. 모른척했더니 근무하고 있는 방까지 쳐들어와 업무를 봐야 할 의자에 앉아 일어나질 않았다.
"엄마 일해야 하니까 나가줄래?" 하니 "왜 불러도 대답하지 않아?"라고 심통을 부린다.
"엄마가 대답이 없고, 네가 급하면 소리 지를게 아니라 방으로 찾아와서 말했어야지!" 하니까 불만으로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녀석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 : "아들 뭐야, 어떤 게 요새 힘든 거야 말해줘 봐 엄마가 들어줄게" 잰걸음으로 바쁘게 상투적인 질문을 뱉어냈다. 그랬더니
아들 : "엄마, 나 뇌가 뜨거워졌어. 돌봄 교실에서 산수문제를 푸는데 뇌가 뜨거워지더라"
나 : "어머, 왜 그랬을까?"
아들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그렇게 됐어"
아... 이건 내가 바라던 사립초의 일상이 아닌데,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호가 내 예상보다 많이 힘들고 지쳤구나. 그동안 아이가 여러 번 시그널을 보냈던 것 같은데 다 무시했다. 아이가 태권도 외엔 따로 학원을 안 다니니까 이 정도면 꽤 여유롭지 라며 내 기준에서 단정 지었다.
1호는 7세까지 쭈욱 사교육 없이 국공립 어린이집에만 다녔는데 단지 내 어린이집이라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들이 많아졌다. 재택근무를 하며 따로 이모님을 고용하지 않아 근무시간에 맞춰 보육을 오래도록 맡겼다가 5시쯤 하원을 시켰다. 학원은 픽업과 샌딩을 할 여유가 없어 포기하고 있다가, 매일 어린이집으로 데리러 와주는 태권도 학원이 바로 단지 앞에 있어 7세 8월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어린이집에 9시 반까지 등원했다가 태권도가 끝나면 6시 반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면 간단히 저녁 먹고 집 앞 놀이터에서 9시까지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그렇게 놀고, 놀고 또 노는 1년이 흘렀던 것이다.
사립초 돌봄 교실을 끝내고 5시 반에 내리면, 동네 친구들은 저녁을 먹으러 집에 들어가 놀이터에 나가도 포켓몬스터 카드놀이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니 울먹이며,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마음껏 할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난 그 아이의 심정을 진심으로 공감해주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린이집 다닐 때 나와했던 공부는 겨우 하루 1시간이었는데 갑자기 1학년이 되고 매일 7교시까지 하고, 돌봄 교실까지 소화하려니 지쳤을만하다.친한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던 하루 3시간이 '뿅' 사라져 버렸다. 아이는 그 점을 제일 속상해했다.
잘 먹고, 잘 자고 , 잘 놀기만 하면 했던 어린이집 시절은 끝이었다. 그 시간은 내게도 아이에게도 황금기였던 것이다.
1호가 초1이 되고 난 후 아이 또한 업무 스케줄에 맞춰 혹독한 사회인이 돼버렸다. 짜증이 부쩍 늘어 유난이라고만 치부해버렸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잠이 부족하고, 동네 친구들과 충분히 놀지 못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어졌다는 걸 배려하지 못했다.
8세가 되고 난 후 부쩍 "엄마, 같이 자자 안아줘" 란 표현을 아직 아기라서 그렇구나 단순히 치부했다. 아이 나름대로 지친 마음을 충전하고 싶었던 건데...
첫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왔을 때 기쁘기만 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받아쓰기 시험도 100점을 받으니 어느새 그게 당연해졌다. 아이가 울부짖기 시작하니 그제야 글쓰기를 무척 싫어하는 녀석이 얼마나 힘들게 연습했을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나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이를 배려하며 더 느슨하게, 천천히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고민하던 것과 달리 아이의 요구사항을 듣고 한 걸음식 뒤로 물러서니 이내 아이의 얼굴에 낀 먹구름도 하나 둘 걷혀갔다.
세상에 그냥 그렇게 쉽게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다시 한번 깨달아진다.
아이의 요구사항을 존중하며 그동안 열심히 배운 피아노를 그만뒀고, 영어는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1호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퀴즈 타임을 길게 가지게 됐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바로 그다음 주부터 아이는 영어시간이 재밌어졌다고 고백하더니 방학식날에는 영어시간이 제일 좋다며 "보드마카" 마크 티처가 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3월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1호의 같은 반 아이들의 하교 후 스케줄을 듣게 됐다. 학교가 끝나고 영어학원에 수학학원에 논술까지 추가로 다니는 학원들이 참 많아 나만 이렇게만 키워도 되나 약간 불안했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조금 느슨하게 나도 아이도 풀어주니 오히려 쉽게 1학기를 보낼 수 있었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결론은 선배님들 말대로 맞벌이 가정에는 사립초가 딱인 듯싶다.
하지만 옆집 엄마의 카더라 통신이 아닌 내 아이의 말과 행동에 귀 기울일 때 해당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