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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 R Aug 05. 2022

텀블러를 쓰는 이유

환경운동가는 아닙니다만,

 아쉽게도 지구 온난화로부터 미래 세대를 지켜내야 겠다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아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하게 됐다.


 1호는 15년 여름에 태어났다.

외국인인 남편은 간호사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기형에 대해 한차례 설명을 들었지만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선생님께서 큰 문제는 아니니 전혀 걱정할 것 아니라고 했다며 나에게 알려줬다. 다만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면서 불편한 것이 하나 있으니 퇴원할 때 설명해주겠노라 하셨다 한다.

 

 뒤늦게 내용을 파악하고 온 친정엄마는 아이가 마치 죽을병에 걸린 것처럼 얼굴이 어두워지셨다. 잘 모르겠으니까 퇴원할 때 네가 가서 들으라고 했다. 남편이고 친정엄마고 두쪽 다 설명을 명쾌하게 하지 않으니 불안한 마음으로 5박 6일을 보냈다. 드디어 퇴원 날이 밝았다.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터라 좌우로 가른 배가 아파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허리는 구부정해서는 힘겹게 신생아 옆에 서서 1호가 가진 증상에 대해 들었다.

 기저귀를 열어 보이냐고 말씀하셨지만 남자의 생식기를 남편 말고 처음 보니 뭐가 문제인지 잘 파악이 안 됐다. 설명을 빠르게 해 주셨는데 무슨 말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아기가 소변도 잘 누고, 생명에 지장은 없는데 나중에 아이의 정서에 문제가 될 거라고 하셨다. 아이가 6개월이 되면 꼭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까 봐 임신 중에 손이 베도 연고조차 안 발랐는데...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니... 생명에 지장이 없다니 수술은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그렇게 만 5개월이 흘러 영유아 건강검진 때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기저귀를 열어 보시더니 "요도하열"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용어가 어려워 핸드폰을 열어 메모장에 요 도 하 열 4자를 저장했다. 신생아 시기엔 늘 누워서 소변을 누기 때문에 1호가 컸을 때 왜 정서적으로 안 좋다는 건지 이해가 통 가지 않았다.

병명을 듣고 나서 며칠간 초록창에 폭풍 검색을 해보니 비뇨기 수술로는 연세 세브란스 병원의 한상원 교수님이 가장 유명하다고 했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께서 꼭 6~8개월 사이에 수술을 받으라고 당부하셨는데 그 교수님은 면담을 잡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과의 이용승 교수님께 예약을 잡고 찾아뵈었다.  

신혼 때 우리 부부가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 아이 기형의 원인이라 생각이 됐고 이것은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졌다. 내가 사는 곳은 7층이었는데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서 아이와 떨어져 죽으면 모든 게 끝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날도 눈물이 고인채 "선생님 임신기간 중에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여쭤보니 엄마 탓이 전혀 아니라며 다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는 선천적 기형이라고 안심시켜주셨다.

"요도하열의 원인을 밝히는 논문중 하나에서는 임신 중 생식기가 형성되는 시기에 남성호르몬이 감소해서 그럴 수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가설일 뿐이고 원인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습니다. 귀두 끝에 위치해야 할 소변 구멍이 귀두 아래에 위치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소변을 서서 보면 밑으로 소변이 퍼지면서 옷이 젖을 수 있습니다. 증상이 심하면 앉아서 소변을 봐야 할 수 있어 사춘기 시기에 정서적으로 힘들 수 있어 만 6~8개월 사이에 수술을 권합니다."라고 하셨다.

아직 모유수유 중인 아이를 하루 꼬박 금식을 시켜야 하고 수술 후에도 마취가 깰 때까지 먹을 것을 줄 수 없었다. 수술 날이 되어 순번을 기다리며 금식은 계속 이어졌다. 3~4시간을 아이가 젖 냄새를 맡고 울다가 지쳐 나중엔 목이 쉬어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수술이 끝나고 7일 정도 입원실에 있으면서 제주에서 서울까지 날아오신 어머니를 뵈니, 서울에 살며 마음먹으면 쉽게 올 수 있는 거리에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렇게 아들처럼 요도하열, 잠복고환을 갖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꽤 많구나 싶어 많이 놀라웠고 한편 위안이 됐다.

그렇게 요도하열의 원인을 혼자 찾고 찾던 중 16년에 방영된 환경호르몬 SBS 스페셜을 시청하게 됐다.

미국에서 요도하열은 10년 전 신생 남아 7백 명중 1명 5년 전에는 3백 명 중 1명, 현재 125명 중 1명꼴로 최근 들어 발병 빈도가 확연히 증가했다고 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플라스틱이 지목된다. 바로 프탈레이트와 비스페놀 A 다.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 첨가제이며 비스페놀 A 는 플라스틱 병, 플라스틱 식품 용기에서 흔히 발견된다. 오늘날 종이가 주로 인쇄 목적으로

점토를 함유한 BPA로 코팅되어 있기 때문에 식료품점과 식당에서 흔히 사용되는 영수증 용지에서도 BPA가 노출될 수 있다.

사전에서 두 화학물질의 정의를 검색해본 나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1호를 가진 임신기간 중 생식기가 생성될 무렵에 남편이 '세계 식품 과자' 과게를 오픈했기 때문이다.

6시쯤 회사에서 돌아오면 곧장 가게에 가 하루 종일 고생한 남편과 교대를 해주었다. 남편이 저녁을 먹는 동안 나는 영수증을 정리하고, 손님이 가고 한가해질 때면 매장 뒤켠에 우두커니 앉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다 식은 음식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곤 했다.

원인을 알아내고 나자,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난 그 이후로, 어딜 가든 "영수증은 됐어요"를 입에 달고 살게 됐다. 주차 확인을 해야 해서 꼭 가지고 가야 하는 때가 아니라면 결코 손에 쥐지 않았다. 그리고 16년 당시엔 텀블러 운동이 일지 않아 정말 유난스럽게 보였지만 육아휴직 후 회사에 복직해 늘 텀블러나 도자기 머그잔을 들고 따아를 마셨다.

텀블러를 잊은 경우엔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에도 아아를 마셔, 울며 겨자 먹기로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족이 됐다.


 조카가 요도하열로 2번이나 고생스러운 큰 수술을 했음을 앎에도 아직 자기 새끼를 낳아본 적 없는 동생들에겐 잔소리로 들릴 뿐인가 보다. 그들은 여전히 편의점 도시락을 즐겨먹고 아무렇지 않게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뜨거운 김이 폴폴 나는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식구들을 볼 때면,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귀찮은데 뭐 어쩌냐는 태도였다. 그리고 아이 낳아 기를 생각 없으니 쓸데없는 걱정 말라고 핀잔을 줬다. 2호를 낳고 20년 코로나를 맞이하고 나니, 더 편리하고 간편한 육아용품들이 시장에 나왔다. 가장 놀랐던 것은 비닐로 만들어진 1회용 젖병이었다. 아이가 먹기 전 분명 또 전자레인지에 데울 수도 있을 텐데 가서 말해줄 수 도 없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다.

     

 키즈카페에서 마주친 모르는 부모들이라도 아이에게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뜨거운 음식을 먹일라치면 당장에 뛰어가 말리고 싶은 유혹에 늘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아이가 요도하열이란 것이 알려지게 되면 나중에 놀림받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 친한 친구에게 조차 아들이 무슨 병명으로 수술받았는지 고백할 수 없었다.

그저 영수증 만지면 안 돼, 텀블러 써야 돼 라고 소극적으로 알릴 뿐 , 왜 내가 이렇게 지구를 위하게 됐는지 설명할 수 없어 답답했다. 회사 다닐 때, 불임으로 몇 년간을 고생하고 눈물짓는 동료들을 많이 보게 됐는데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것일 뿐이니

우리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라도 텀블러를 쓰자.

Let's Love our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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