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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 R Nov 15. 2022

반성

11월 15일 새벽 QT

 분기별 1번 있을까 말까 한 남편과 큰 다툼이 어제 있었다. 자녀들 앞에서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어제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2호 앞에서 화가 잔뜩 난 못난 모습을 보여줬다. 부모의 싸움 앞에서 아이들은 떨기 마련인데...

 평소에 매우 느린 남편인데 어제는 내 화가 쉬 사그라들지 않을 걸 직감하고 민첩하게 놀란 아이를 데리고 일터로 향했다.  소중한 이 작고 작은 아이는 내 화가 자기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엄마가 데려다주면 안 돼?"라고 용기를 내어 묻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미안해, 오늘은 엄마가 많이 바빠 다음에 함께 가자~" 하니 2번 묻지 않고 문밖을 나선다.


 속상한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고 이런 상황에 굳이 일찌감치 일하겠다고 억지로 앉아 무심하게 깜빡거리는 노트북의 커서만 바라봤다. 눈물이 고여 툭툭 흘렀다. 잠시 머리를 양다리에 묻고 소리 내 울었다. 이럴 때면 참 재택근무가 좋다. 마음대로 울어버릴 수 있으니... 사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이렇게 마음껏 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참 없다. 출근을 했다면 아마 영혼 없이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눈물을 삼켰겠지...

감사할 일이다.


친정엄마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 나 힘들어" 하자마자 엄마는 직감을 했다.

 "엄마 지금 김장재료 사러 왔어 바쁘다. 끊어~" 툭...

그럼 그렇지 뭐... 뭘 기대했니? 엄마의 이 차가운 단절이 냉수를 한잔 들이켠 것 마냥 정신 차리게 한다.

다시 자리를 고쳐 앉아 모니터를 응시했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 마음의 매무새를 다시 잡고 잠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남편과 잘 싸우고 싶습니다. 물어뜯는 싸움이 아닌 발전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도와주세요. 우리 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세요.'

고맙게도 아이들은 9시에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더니 냉랭하게 무시로 일관할 줄 알았던 남편이 내가 가리킨 소파에 순순히 앉았다. 감정적으로 내뱉으면 안 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다.

 노력이 통한 건지 대화는 잘 마무리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그저 남편의 공감과 이해였다.

요즘 얼마나 육아와 일에 치여 힘들었는지 물가는 얼마나 오른 건지 이 무거운 삶을 지탱해내느라 얼마나 지쳤는지 사실 진심으로 얼마나 쉬고 싶었는지 조목조목 말하는데

다 알고 있었다고 같이 짐을 나누자며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의 모습 만으로 서러움과 서운함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난 뭐 이리 쉬운 여자인가!


하루 종일 혈기를 부렸다 울었다. 감정을 내뱉지 않고 대화하기 위해 긴장을 빡 하고 있느라 12시까지 지속된 대화가 마무리되자마자 급 피곤이 밀려왔다.

'감사합니다. 주님'

  

에필로그

목이 말라 눈이 반짝 떠졌는데 새벽 4시 반이다. 어제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 일찍 일어나 일하려고 했는데 잘됐다. 일찍 일어난 김에 QT묵상하고 일이나 해야겠다.

이튿날에 그들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 출애굽기 32장 6절
출애굽기 32: 1- 14절 11월 15일 QT묵상

오랜만이다. 이렇게 QT의 말씀을 곱씹어보는 것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있었던 밤. 일찍 감치 잠자리에 들어 곤히 잠에 들었다. 목이 말라 잠깐 깼을 때 거실에서 밤 늦은 시각까지 일하던 남편이 "글쎄 이태원에 사고가 생겼데. 사람이 죽었데"라고 알려줬다.

깜짝 놀랐지만 무슨 사건이 있었겠지 짐작했다. 그곳은 과거 미군부대가 있어 가끔 그런 사고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그게 150명이나 된다며 덧붙였다. 잠이 덜 깬 나는 농담을 좋아하는 남편이 시답잖은 말을 하는 줄로 여기고 다시 잠자리로 향했다.

 '말이 돼?'

 10월 마지막 주, 사전에 이웃집에 양해를 구하고 복도를 한껏 핼러윈 분위기로 꾸몄다. 재택근무라지만 비어있던 자리에 새로운 직원이 왔고 일상적인 업무를 하며 OJT도 해야만 하는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상황이었지만 아이들이 행복해할 것만을 상상하며 온 힘을 다해 풍선을 불어 제쳤다. 몸에 남아있는 산소를 다 끄집어내 풍선을 만들고 나니 뇌에 산소포화도가 반쯤은 사라진 것만 같아 어질어질했다. 평소에 풍선 꼬다리를 잘 못 묶는 편인데 알록달록 풍선들을 몇 개를 묶은 건지 검지가 다 발갛게 퉁퉁 부어올랐다.    

드디어 1호와 2호 친구들을 다 초대해 "Trick or Treat"을 외치고 사탕과 초콜릿을 잔뜩 쥐어주고 나니 온몸이 마치 젖은 수건처럼 무거웠다. 핼러윈 기원을 제대로 알고부터 이맘때쯤 작게 작게 즐기던 무리 속에서 의식적으로 HappyThankgivig을 하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1호 2호 모두 돌이 되기 전 크리스마스 예배시간에 주님의 자녀로 잘 키우겠다고 모든 이들 앞에 맹세했는데, 아침마다 아이들 QT를 챙기고 식기도를 하며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그날 내 맹세는 공허한 외침이 됐다.

어쩐지 아이들과 이웃들과 준비한 가랜드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 찍고 즐겨서 참 보람됐지만 모든 것이 마무리된후 왠지 모를 찝찝함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건 무의식 중에도 하나님 앞에서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가보다. 


다음날 잠이 깨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아려왔다. 경건의 모양만 남아있는 나의 삶을 보고 아이들이 어떤 걸 느꼈을까? 현장에서 이유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젊음들에게 책임감이 느껴졌다.  


마음이 먹먹하다. 미안하다.


그동안 출애굽의 송아지 우상 말씀을 묵상할 때면 아론은 나와 다른 부류라고만 여겼다. 내 열심히 가득해 신중히 생각해보지 않고 우상을 빚고 사람을 선동했던 내 모습을 반성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깨어있는 게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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