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진 Jul 01. 2016

인생 놀이

8퍼센트! 나의 운명!

8퍼센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금 길고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라 유익하지 않거나 마음 불편하실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예전 생각을 하면 도무지 놀았던 기억뿐이다.


내가 진짜 많이 놀았던 건지, 기억이 왜곡된 건지... ^^


초등학교 때, 하루 평균 7~8시간씩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놀기 위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숙제와 복습을 끝냈었다. 25문제 푸는데 5분 안 걸렸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발목이 아파서 정형외과를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하루에 7시간 이상씩 뛰면 당연히 아프다고 휴식을 취하라고 하셨다.


사람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놀았던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일정이 각기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여(?) 아침 6시에 아파트 놀이터에 모여 피구를 했다. 그것도 매일 했다. 반 친구들 2~3명 빼고 전원 참석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참여율이다. 아침부터 시끄럽다고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졌고, 한 친구 엄마는 내게 오셔서 “우리 애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너는 공부할 거 다 하면서 이렇게 친구들 놀자고 꼬시면 되겠니?”라고 혼을 내시면서 친구를 데려가기도 하셨다. 굴하지 않고 놀이터에서 학교 운동장으로 장소를 옮겨 계속하다가 우리 반이 반대항 피구대회(이런 비공식 행사를 전교생이 같이 했었다.)를 짱 먹고 방학과 함께 해산했다.


중학교 때는 가까운 친구들과 긴밀하게 본격적으로 놀았는데 주로 대화를 많이 했다. 5~6명이 모여 그룹(?)을 만들었고 그룹 이름도 지어 놀았는데 그 이름은 차마 밝히기가 부끄럽다. 그 시절 여중생들이 그렇듯 6 roses나 5 princess 머 그런 이름들 중 하나였다. (오.. 누가 내 손 좀 펴주세요..ㅠㅠㅋ)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았을까? 친구 이야기, 남자애들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머 그런 것들 이었다. 방과 후에 교실에 한참 남아서, 시장에서 떡볶이 먹으면서, 친구 버스 같이 기다려주면서 쉴 새 없이 이야기했고, 그것도 모자라 열심히 돌림 일기장을 썼다.  


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정말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에 기숙사에 들어가서 토요일 점심에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어서 그 시절부터 불금의 개념을 철저히 지켰다. 금요일은 늘 새벽까지 놀았던 것 같다. 2학년 때는 특히 같은 방 친구들과 쿵짝이 너무 잘 맞아서 매일 밤 우리 방에 휴게실처럼 친구들이 모여들어 놀다가 사감 할아버지한테 야단맞고 자러 가곤 했다. 1, 2학년 때는 별 보는 동아리 들어가서 매일 야자실 옥상 올라가서 하늘을 봤고, 1년에 4~5번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관측 여행 가서 밤새 별 보고 술도 먹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고3 때도 놀기를 멈출 수가 없었는데, 친구들의 공부는 방해할 수 없어서 주로 먼저 대학 간 친구들이나 1, 2학년 후배들과 놀았다.


대학교 때 집 떠나 포항에서 기숙사 생활하면서 본격적으로 놀았다. 그곳은 놀기엔 천국이었다. 놀 친구들이 24시간 있고, 그만 놀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1, 2학년 때는 동아리를 하면서 놀았다. 하루 4시간씩 동아리 활동을 하고 난 후 거의 술을 먹으러 가서 일찍 끝나면 새벽 2시, 좀 놀면 아침 동트는 거 보면서 기숙사에 들어왔다. 1학년 때는 일주일에 3번 아침 8시에 퀴즈가 있어서 술을 좀 깨고 바로 퀴즈를 보러 갔다. 그리곤 너무 졸려서 잠깐 기숙사에서 잔다는 게 일어나면 오후 6시가 되곤 했다. 수업을 째서 속상한 마음에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고 다시 밤 9시가 되면 술을 먹으러 나갔다. -_-;; 참 체력이 좋았던 시절이다. 3학년 때는 과 학생회장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교수님, 박사과정, 석사과정, 학부생들이 다 함께 즐겁게 놀 수 있을지에 매우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했었다.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가서 서울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놀았다. 24살부터 직장 생활해서 또래보다 벌이가 괜찮았던 나는 학생 친구들에게 인정을 많이 베풀면서 서울 직장인 생활을 즐겼다. 25살엔 등산에 빠졌는데 20대 중심의 산악회를 만들어서 매주 일요일에 산에 다녔다. 내 친구, 친구의 친구들을 모았더니 매주 3~10명의 사람들이 참여했고 당시 에너지가 넘쳐서 산을 날아다녔다. 26살에 차(모닝)를 한 대 뽑았더니 남자가 필요 없어지고(-_-;;;) 친한 친구들과 주말마다 놀러를 다녔다. 운전은 모두 내 몫이었다. 28살엔 친구들과 폭탄주를 마시며 놀다가 홍대에 가게를 내서 은행원 생활과 카레집 운영의 이중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을 만나 놀던(?) 생활을 접고 친구들에게 배신(?)을 때리면서 29살에 결혼을 했다.

결혼 이후 약 4년의 안식년(?)을 가지고 노는 것을 쉬다가...


은행 그만두고 백수 생활하면서 진짜 본격적으로 놀았다. 적을 두지 않고 진정한 자유인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간 못 만났던 사람들 직장 앞에 찾아가서 얼굴 보여주고 밥 얻어먹었다. 그러다가 페이스북에 ‘백수 클럽’을 만들어 나와 비슷한 백수들을 모아 놀았다. 백수 클럽 정모는 낮에 술집에서 시작하여 새벽에 파했다. 1년은 놀 줄 알았는데 더 재밌어 보이는걸 찾아 백수를 조기 졸업했다.


현재 8퍼센트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생 놀이를 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오늘의 즐겁고 가슴설레고 터프한 놀이를 하기 위한 연습을 했던 거구나! 8퍼센트라는 매력적인 놀이에 푹 빠져버렸다.

놀다가 재미없으면 그만두는 가벼운 놀이는 결코 아니다.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서 놀고 있다.

동시대에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이에게 삶의 행복을 주는 가슴 뜨거운 놀이,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을 동료들과 힘을 모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짜릿한 놀이. 그런 인생 놀이를 하고 있다.


자! 우리 전우들!  신나게 그리고 치열하게 한 번 제대로 놀아봅시다!


#8퍼센트 #인생놀이

매거진의 이전글 어서 와, 기숙사는 처음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