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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티 Dec 30. 2021

방황하는 것은 늘 옳다

2021년을 보내며,

한 해가 벌써 지나가고 있다. 2021년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아쉽기도 하다. 올해 내 삶에 너무 많은 이벤트들이 있었다. 좋은 이벤트, 나쁜 이벤트, 슬픈 이벤트들이 정신없이 뒤섞여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삶을 마구 흔들어댔다. 안정감을 추구하는 내가 안정과는 거리가 있는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나의 모습은 정말 뚜렷한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사람 그 자체였다.


과거 몇 년을 회상해보면 지금과 비슷한 때가 있었다.

바로 2017년 겨울.


당시 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느낄 정도로 인생의 좌절을 겪었다. 회사에서도, 가족과의 관계도, 연애도, 모든 것이 꼬일 데로 꼬여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영혼은 작은 것에도 쉽게 무너지고 흔들렸다. 29살, 지독한 아홉수에 걸렸다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당시 일부러 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이 3킬로 이상 빠졌다...)


1월의 어느 날, 친구와 삶의 무미건조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충동적으로 7박 9일 프랑스/독일 비행기 티켓을 결제했다. 출발일은 2018년 5월.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리라. 비행기표를 끊고 난 후 떠나는 날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버텼다. 아니, 버텼다 보다는 살아내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행의 날이 다가왔다.




SUPER ISFJ 인 나는 촘촘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맞춰 움직이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계획을 세울 에너지조차 없었다....) 그래서 비행기/숙소/기차표 예약과 같은 꼭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여행 장소도 스크랩하는 정도로만 준비했다.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아서였을까, 여행지에서 매 순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곧 계획이 되었다. 걷고 싶은 날은 무작정 걸었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즉흥적으로 먹고, 지나가다가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갔다. 지쳐있던 나를 데리고 도망치듯 떠난 프랑스, 독일 여행에서 매일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감정에 충실하며 하루를 꽉 채우며 보냈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나서 배운 것은 계획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매일 감정을 지지해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여행을 다녀온 후 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달라졌다. 힘들고 방황했던 내 자신을 믿어주고 안아주었다. 지금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며 나를 보채고 채찍질하지 않았다. 그렇게 당시의 방황기를 조금씩 극복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여행을 간 이유가 방황하는 삶에서 도피하고 싶어서였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방황하는 삶을 극복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었기에 현재의 삶과 분리하고 잠시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 느꼈고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내 삶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 괴테, 파우스트 中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올해 내가 겪은 방황을 노력과 도전으로 해석하고 싶다. 한 해의 끝에 실패만 남은 것 같아 허무했는데 생각해보면 모든 실패는 도전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이지 않나. 그렇기에 올해의 끝엔 실패가 아닌 도전과 노력의 경험이 함께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2022년에는 올해의 방황을 딛고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디자인해나가고 싶다. 조금 덜 흔들리고, 조금 더 꼿꼿하게 서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1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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