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향기 Dec 28. 2022

아이들이 아프다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들도 책을 읽고 있었다. 다음 시간까지 한 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고 독후감 쓰기를 마쳐야 한다. 교실은 조용했다. 어디선가 남자아이의 두런두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몇 마디하고 마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 내서 읽고 있나 싶었다. 고개를 들었다.  

 '야, 지금 무슨 상황이야??"

 그 말이 떨어지기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맨 뒤에 앉아 있던 정철이가 화닥 일어났다. 그러더니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은이를 마구 패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이게, 이게...

 달려갔다. 뜯어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철이는 키가 180cm가 넘고 몸무게도 아마 80킬로는 족히 넘을 아이. 내가 악을 쓰며 말리자, 잠시 비켜서는 것 같다가도 다시 달려들어서 복싱 선수가 샌드백을 패듯 다시 주먹을 날렸다. 은이는 일방적으로 맞고 있었다.

"야야, 너희들은 안 말리고 뭐 하는 거야? 엉?"

옆에 있는 다른 남학생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두 명이 달려들어 정철이를 뜯어말리고 겨우 복도로 끄집어냈다. 담임을 부르고, 은이는 보건실로 보냈다. 다리가 휘청거렸고 심장이 벌렁댔다.


 두런두런 소리가 났던 것은 정철이가 은이한테 막 뭐라고 했던 순간이었다. 발단은 은이가 정철이의 아빠 욕을 했다는 거. 그러니 정철이도 지지 않고, '너도 아빠 피를 빨아먹고 사는 년'이라고 뭐라고 뭐라고 하다가 은이가 볼펜을 집어던졌고, 볼펜이 날아오자 정철이가 벌떡 일어났던 것이었다. 정철이는 성난 사자처럼 포효했다.

 한참이 지났어도, 정철이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헐떡대고 있었다. 진정하라고, 괜찮다고 등을 두드려주니까 눈물을 쏟아냈다. 정철이는 한쪽 손가락이 잘려나간 채 없다. 맨 처음에 정철이 옆에 다가가서 책 넘기는 것을 보았을 때 잘려나간 뭉툭한 손가락 끝을 보고 섬찟 놀랬다. 하필 그 손가락은 오른손이어서 정철이는 왼손잡이였다. 오른손을 되도록 안 내놓으려고 하지만 노트를 잡을 때나 책장을 넘길 때는 할 수 없이 내밀어지는 손가락이었다. 어렸을 적 아빠 일을 돕다가 다쳤다고 들었다. 나중에 지가 돈을 벌면 인공 손가락을 해 넣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까지는 늘 한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니는 얌전한 아이로만 보였는데, 3학년이 되고 나자 키가 훌쩍 크고 몸집도 커져서 제법 의젓해 보였다. 커진 몸집 때문에 그런지 정철이가 별로 짠하게 보이지 않았다. 존재감도 훨씬 드러나 보이는 듯했다. 집 나간 엄마가 돌아오고, 가정도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없던 일로 하자던 아빠의 약속은 술을 먹으면 무효한 것이 되어서 엄마를 쥐여 팬다고 들었다. 엄마가 예쁘장해서 바람이 났고, 급기야 집을 나갔다는 것.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살기로 했다지만 간혹 골목에 나앉아 있는 정철이를 특수반 샌생님이 데리고 있곤 했었다.  

 은이도 엄마가 집을 나간 아이. 은이의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고 은이의 아빠는 새장가를 들었다. 은이는 새엄마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가끔 친엄마를 만나러 간다고 목포로 나갔다가 들어오곤 했다. '지금엄마'가 잘해주는데, '지금엄마'하고 잘 지내보라는 말에 고개를 아주 크게 휘둘러댔던 아이이다. 은이는 교무실에 자주 와서 선생님들 옆에 자주 서 있곤 한다. 그러면 몇 마디 따뜻한 말이라도 붙여주고 뭐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건네주곤 한다. 그러면 은이는 고양이가 몸을 비벼대는 것처럼 몸통을 기울이고 웃음을 지어주곤 했다.

 둘 사이는 원래 안 좋았다고 했다. 2년 전에도 정철이가 욱해서 싸움이 벌어졌다고 했다. 싸움이 발단이 그때도 아빠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 얘기를 듣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니 엄마 없어!'라는 말이 최대의 욕이다. 소위, '패드립'이라고 하고, 패드립 듣는 것을 아이들은 최대의 수치라 여긴다. 별다른 말이 아니어도 '니 엄마, 니 아빠'라고 하면 일단 욕이 되고 만다. 엄마, 아빠를 자랑으로 여기는 아이들도 많을 텐데, 자랑은 자랑대로 바보가 되고 만다. 저의 부모를 자랑하는 아이는 철 모르는 아이이고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는 아이이다. 남의 자랑 때문에 상처받을 일이 있을까 봐 배려하려는 것은 아닌 듯하다. 자기 부모를 자랑하는 것은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아이 취급을 받고, 또 남의 부모를 입에 올리는 것은 욕이 되고 만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쨌든 두 아이들은 저희 부모 때문에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다. 부모가 악을 토하며 싸우고 있을 때, 그것을 목격하고 있는 자식들 마음은 어떠할까. 나의 부모님을 생각한다. 내 부모님도 무척 싸웠었다. 그때마다 나는 골방으로 기어들어가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부모가 싸울 때는 세상이 나를 버리고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아이들도 그럴까.


 하얀 패딩 옷에, 검은 롱패딩 속에 우그러든 마음이 들어있는 것만 같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니고 있어도, 풀어지지 않은 원망과 분노가 숨어있다. 그런 아이들이 많다. 화려한 매스컴, 눈부신 연예인들, 재미있는 게임 속에 부모님의 자리는 없다. 아니, 그 속에 아이들의 눈물이 없다. 눈물은 겉돈다. 속으로 들어가 있지 못한 눈물이 겉돌아 폭력이 된다. 왜 우리 집은 이러냐고, 왜 우리 엄마, 아빠는 다르냐고, 왜 남과 다르냐고,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것이 냉소가 되고 무력함이 되고 분노가 된다.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 답은 알고 있지만 그 많은 말들을 일일이 말을 못 하겠다. 정철이는 학교폭력위원회에 넘겨졌다. 교육청에 신고를 했으니, 곧 조사가 나오고 진행이 될 것이다. 내 시간에 그랬으니, 나의 책임도 많다. 그 책임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정철이는 조금 늦게 등교했고, 은이는 오늘 학교에 오지 않았다. 은이는 머리에 혹이 나 있었고, 손가락 하나를 철심으로 고정해놓은 상태이다. 미안하다. 내가 어른이어서, 선생이어서 정말로 미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원주택을 팔았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