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한 비가 종일 내리다 그친 저녁
블록 틈에 돋아난 풀을 뽑는다
손끝에 묻어나는 순한 힘
한참을 울다 그친 사람처럼
쉽게 뽑혀 나온다
이 순함이 있기까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속수무책의 실뿌리들을 생각한다
몸속까지 들어오는 물기에 젖어 있기를
꼬박 하루 그리고 이틀
당신을 이해하는 것도 그러할 것이다
내내 당신에게 젖어서 감돌기를
꼬박 한 해 그리고 두 해
못물도 갑자기 달을 풍덩 빠뜨리고는
한 틈도 깨뜨리지 않은 채 꼼짝없이 안고만 있다
이 모든 것을 일러바치는 개구리 틈에서 나는
함부로 몸을 뒤집지는 않을 작정이다
가만히 다만 가만히 속수무책인 양
달빛 아래 오래 앉아 있어 볼 작정이다
달빛이 어디쯤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비가 흠씬 내리고 난 그다음 날의 풀 뽑기는 참 쉽다. 풀은 지 힘을 모두 놓아버린다. 손끝에 묻어나는 촉촉한 가벼움. 실뿌리들은 작은 흙덩이를 안고 딸려 나온다. 조금만 힘을 들여도 쉽게 뽑아지는 비 온 다음날의 풀 뽑기이다.
모두 놓아버린다는 것, 온갖 아집과 고집과 집착으로부터 놓여난다는 것, 그것은 말만 들어도 자유롭다. 꽃으로 다 날리지 못한 상념들이 남아서 뿌리가 된다. 비 오는 날이면 뿌리까지 말랑말랑해진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흠씬 슬픔에 젖어 있다 깨어난 다음 날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가 수월하다. 다른 결심, 다른 표정, 다른 일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