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담은 음식
김 위해 하얀 밥을 깔고 알록달록한 재료들을 함께 돌돌 말아준다.
그다음 참기름과 깨를 뿌려 고소함을 더해준다. 엄마 옆에 앉아 썰어주는 김밥을 하나 둘 집어먹는다.
김밥 재료들을 몰래 집어 먹기도 했는데
그렇게 먹다가는 나중에 김밥 쌀 재료가 모자라다는 핀잔도 같이 듣게 된다.
게맛살과 달걀지단, 햄이 크게 들어간 김밥을 뽑는 건 행운이다.
늘 김밥 꽁지가 제일 맛있다는 엄마는 꽁지 부분만 썰은 김밥을 한가득 접시에 담아 놓기도 했다.
이른 아침 부엌에서 풍겨져 오는 김밥의 고소한 냄새는 하루를 설레게 한다.
엄마가 만드는 김밥을 먹는 날은 음식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들어가는 재료만큼이나 김밥은 나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어릴 적 소풍날 느끼던 설렘을 간직한 음식이자 바쁜 점심시간 간단히 먹기 위한 음식.
몸이 고단한 날 괜스레 먹고 싶은 음식이다. 그리고 언제나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주는 김밥이 제일 맛있다.
어릴 적 나에게 김밥은 늘 설레는 음식이었다.
소풍을 갈 때 먹는 음식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날이 아니더라도
엄마가 김밥을 싸줄 때면 깜짝 이벤트가 생길 것만 같았다.
기분이 들떴다. 김밥을 싸가는 날은 점심시간에 친구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저녁때도 남은 김밥은 맛있었다. 밥에 간이 배어있어 감칠맛이 더 느껴지는 듯했다.
김밥은 하루종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분식집에서 먹는 김밥은 당연하게도 집의 김밥과 달랐다.
만드는 것에 비해 가격은 저렴한 음식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출근시간이나 바쁜 점심시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다 보니 김밥이었다.
햄버거보다는 좀 더 건강하게 느껴지는 패스트푸드랄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엄마표 김밥에 비해 퍽퍽하고 싱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묵국물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들어가는 재료들이 바뀌고 다양해지면서 가격도 많이 올랐다.
어느새 시금치나 오이 대신 우엉과 당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캔참치와 튀김이 들어가는 김밥도 생겼다. 그래서 가격이 올라 더 이상 저렴한 음식이 아니다.
예전에 김밥은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는데 지금의 김밥은 애매한 듯하다.
반대로 맛있는 김밥집을 찾는 일은 어려워졌다.
다들 평균은 하는데 그렇다고 특별히 맛있는 곳은 찾기 힘들다고 할까.
내 기준이 엄마표 김밥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런 평범한 음식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어떤 재료가 들어가든 여전히 아무 즐거움 없는 패스트푸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냥 간단히 먹기 위해 찾는 음식이다.
누구나 아플 때 찾는 음식이 있다. 김밥은 내가 몸이 안 좋아질 때 찾는 음식이다.
보양식은 아니다. 오히려 몸에 컨디션이 안 좋아질 때 보내는 신호이다.
김밥이 먹고 싶은 날은 ‘너 몸이 별로 안 좋아질 것 같아. 빨리 이거 먹고 쉬어’라고
내 안의 목소리가 말하는 것 같다.
신기하다.
몸이 힘들어지기 전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많다. 그리고 김밥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엄마의 손맛이 그리운 것 같다. 아니면 음식이 주는 추억이 위안이 되어 힘을 내라고 말하는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