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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Mar 27. 2024

오늘도 걸어가는 중입니다. 1

끄적거림

뚜벅뚜벅. 터벅터벅. 저벅저벅. 어슬렁어슬렁. 총총. 사박사박. 참방참방.

걷는 일은 늘 마음을 대변한다.

그날 마음과 기분에 따라 걷는 소리가 달라진다. 그리고 계절과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따라 변화한다. 

마치 인생처럼 말이다.

오늘도 나는 걸어가는 중이다. 언제나 그랬듯 늘 걷는 중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돌아다니는 일을 좋아했다. 모험심과 호기심이 많아서였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조금 먼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책을 즐기게 되었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는 일. 나의 낭만이자 즐거움이다. 

복잡한 생각은 발걸음에 맞춰 하나둘 사라져 간다.

하루 종일 날 괴롭히던 스트레스는 음악과 주변의 풍경에 풀어져 간다.


하지만 나의 낭만을 방해하는 날들은 많다. 겨울은 산책의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힘든 계절이다. 

차가운 바람에 몸은 움츠러들고 걸음은 빨라진다.

따뜻한 곳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낭만을 찾을 수도 없다. 겨울뿐만이 아니다. 

더운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기 바쁘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도 탁한 공기가 싫어 외출을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산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겨울에 눈이 오는 날이면 강아지도 아닌데 밖에 나가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무도 밟지 않은 곳의 눈을 밟으며 보드득 소리를 듣고 싶다. 

여름의 비가 오는 날은 장화를 신고 참방참방 마음껏 걷고 싶다.

그리고 여름날 저녁부터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밤 산책을 즐기게 한다. 

왜인지 이런 날들의 산책은 계절을 잘 맞이하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나와 남편은 비슷한 취미가 많지 않다. 

하지만 서로 같이 나가 산책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것은 좋아한다.

날이 좋아서 또는 밖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이유로 집을 나설 때도 많지만 

주로 '바람이나 쐬자'라며 산책을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막 이사 왔을 때였다. 

낯선 곳에 적응하기 위해 매주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구경을 했다.

마트와 은행은 어디에 있지. 맛집은 어느 곳이지. 

마치 소풍 때 즐겨하던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부지런히 걸어 다녔다.

새로운 곳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우리가 찾는 곳이 늘어날수록 산책의 즐거움도 커졌다.

오늘은 이쪽으로 가볼까라며 낯선 길을 걸어갈 때에 우리는 마치 모험을 떠난 사람들 같았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산책이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해진 동네의 풍경들이 더 이상 설렘을 주지 않았다.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산책로가 없는 것이 아쉬워졌다. 조금씩 동네로의 외출이 줄어들었다.

대신 우리에게 동네 산책의 의미가 달라졌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 때문인지 발걸음이 여유로워진다.

새로운 곳을 보는 궁금증보다 여전히 그곳이 잘 있는지에 대한 안부가 궁금했다.

부지런히 움직이던 시선은 거리의 사람들과 그날의 풍경을 천천히 담기 시작했고 

우리는 다른 것보다 서로의 대화에 더욱 집중했다.

동네산책이 일상의 단조로움을 풀어내는 모험에서 일상을 즐기는 하나의 취미로 바뀐 것이다. 


“오늘 치우기 귀찮은데 저녁 먹을 겸 나가서 산책이나 할까?”

“나야 좋지. 어디로 갈까? 새로 생긴 곳? 아니면 저번에 그곳?”

“옛날 생각난다. 예전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니.”

“처음보다 엄청 많이 변했지. 사람들도 많아지고. 그거 기억나? 식당이 별로 없어서 줄 서서 먹었던 거.”

“아~ 거기! 식당뿐만이 아니지. 가까운데 커피숍 생겼다고 좋아했잖아.”

“맞아. 그게 뭐라고 엄청 기뻐했지. 우리 그때 참 단순했다.”

“그러게. 그나저나 오늘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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