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거림
겨울은 집 밖을 나서기가 두려운 계절이다.
내가 요즘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아 춥다. 이불 밖은 위험해’이다.
날씨가 추운 겨울은 밖에 나가는 일 자체가 귀찮아진다. 당연히 산책도 줄어든다.
산책은 사전적인 의미로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 천천히 걸어 다니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산책은 집 밖에서만 하는 게 아니지.
나는 산책이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휴식이란 언제나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필요하다.
또한 걷는다는 것은 야외에서만 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걷기는 마음에서도 인생에서도 늘 하고 있는 일이다.
그렇게 나는 계절을 핑계 삼아 집 안에서의 산책을 시작했다.
집안을 둘러보았다. 먼저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베란다로 나가 인사를 했다.
특별한 관리 없이도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하다.
나는 사실 부지런하지 못하다. 식물을 키우고 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은 힘들다.
그래서 나의 게으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난 아이들도 많다.
지금 나와 함께 지내고 있는 아이들은 그런 나의 게으름에 익숙해졌거나
그걸 받아줄 만큼 무던한 아이들이다.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애정. 사람들의 관계처럼 식물들과 나의 관계의 거리이다.
처음에는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주었다. 잘 키워보자는 의욕이 충만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나의 앞선 의욕에 식물들도 말라가고 나도 점점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성향도 잘 모른 채 애정만 가득 담아 준 물이 과했던 탓이다.
식물들은 나의 넘치는 애정에 힘들어하고 나는 그런 애정을 계속 쏟아부으려니 점점 지치고.
서로가 서로를 괴롭게 한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원래의 나처럼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결과는 같았다. 나의 무관심에 아이들이 지쳐간 것이다.
한번 무관심해지니 나의 게으름은 점점 늘어갔고 식물들은 말라갔다.
결국 나를 버티지 못하고 몇몇 아이들이 떠나갔다. 그렇게 찾은 식물들과 나의 거리가 지금이다.
이제는 식물들도 내가 그렇게 부지런한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서 까다로운 관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도 아이들의 모습만 보아도 언제 애정을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추어진 것이다.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애정을 갖는 지금의 이 거리가 우리에게는 편안함이다.
나는 베란다에서 들어와 다음으로 여러 물건들이 널브러진 방으로 향했다.
얼마 전에 오래된 가구들을 정리하느라 꺼내놓은 옷과 책, 기타 잡동사니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하기 귀찮아서 계속 발에 차이게 둔 상태였다.
책상조차 정리가 안돼 글을 쓰려면 바닥에 쪼그려 앉아 컴퓨터를 해야 하면서도 미루고 미뤄둔 일이었다.
언제 정리하지. 한숨이 나왔다. 이번에도 외면할까 싶었지만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 방으로 들어갔다.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느낀 거지만 안 쓰는 것들은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쓰고 입겠지라는 마음으로 방 한구석을 야금야금 차지한 물건들이 너무 많다.
그 언젠가가 오긴 하는 걸까. 하지만 막상 버리자니 아깝다는 마음이 든다.
손이 잘 안 가서 쓰지도 않을 거면서 왜 결정을 못하는 걸까.
쓸까, 안 쓸까. 버릴까, 내버려 둘까. 고민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물건이 아니라 내 마음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안 쓰는 물건들은 나의 미련이다.
먼지만 쌓이게 두면서 무언가로 가득 채우고 싶어 모른 체하는 나의 쓸데없는 마음의 찌꺼기.
그렇다면 물건이든 마음이든 정리를 하고 비우자.
하나씩 정리하고 비우다 보면 깨끗해진 방안도,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 비워진 공간에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도 있다. 그 생각에 내 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청소의 시작이며 건강해질 나의 마음을 위한 산책이다.
나는 산책을 가거나 어느 곳을 향해 갈 때 기분이 그날의 걸음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에 쫓길 때는 무뚝뚝한 걸음으로 길을 걷는다.
즐거운 일을 맞이하러 가는 발걸음은 신나고, 배부름에 여유로운 나는 느긋해진 걸음으로 주변을 돌아본다.
물론 이건 나뿐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 목적지와 기분에 따라 걸음의 무게가 다르고, 각자 마음의 무게를 달고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늘 걸어가는 중이다.
길을 걷기도 하고 삶을 걷기도 한다.
마음에 따라 걸음걸이가 달라진다면 나는 지금 어떤 걸음을 걷고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시가 생각난다. 윤동주의 <길>과 <새로운 길>이다.
오늘도 열심히 걸어가는 당신이라면 한 번쯤은 이 시를 읽고 나의 걸음을 떠올려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