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한국땅을 다시 밟았다. 공항청사 밖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끈적끈적한 공기가 온몸에 착 달라붙었다. 숨이 막혀서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확실하게 한방 있는 웰컴 인사였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왜 한 여름에 가냐고 뜯어말렸었다. 더군다나 쾌적한 시애틀의 여름을 뒤로하고 떠나다니 말이 되냐고. 시애틀의 여름은 보통 22-28도 정도의 이상적인 온도와 낮은 습도로 퍼펙트하다. 기온이 30도 넘게 올라가도 끈적거림이 없어서 쾌적하다. 그런데 4개월 남짓한 이 건조기를 빼면 나머지 8개월은 우기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보통 겨울에 햇볕 따뜻한 곳으로 떠나고 여름에는 이곳을 지킨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룰을 역행해서 퍼펙트한 여름을 떠나 폭염 속으로 가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사춘기 두 아들을 둔 엄마다. 현재 내 인생의 시계는 아이들의 스케줄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먼저 오자고 했고, 아이들의 여름방학에 맞춰야 했다.
다행히 내가 타야 할 공항리무진이 빨리 도착해서 나는 에어컨 속으로 다시 탈출할 수 있었다. 거의 24시간을 깨어 있었던 나는 무척 피곤했지만, 리무진 버스 안에서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었다. 30년을 살았던 내 고국이고 3년 전에도 방문했었는데도 뭐가 그리 달라졌겠냐만, 창밖으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풍경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버스가 서울로 진입해서 유유히 흐르고 있는 한강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나는 그제야 긴장이 확 풀렸다. 그리고 내부순환로 양옆으로 우뚝 솟아오른 아파트들이 보였을 때, 마치 나를 맞이하러 나온 호위무사 같아서 반가웠다. 버스가 내부순환로를 빠져나와서 한 동네로 들어서면서 내 시선을 확 사로잡은 게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불을 밝히기 시작한 알록달록한 네온사인들이었다. 건물의 외벽이란 모든 외벽을 다 덮을 량, 내가 더 예쁘다고 서로 뽐내는 듯, 거기에 조화라는 미덕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따라 그 우스꽝스러움에 정감이 갔다. 내가 사는 시애틀은 시내 중심쇼핑가에도 네온사인이 거의 없다. 대놓고 광고를 하는 빌보드판을 빼면 그저 단조로운 가게 간판들이 있을 뿐이다. 아는 놈들은 알아서 다 찾아온다는 식의 배짱두둑한 가게 주인들만 있는지, 네온사인은 서울만큼 환영을 못 받는다.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단지를 들어서자 나를 반기는 게 또 하나 있었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시끄럽게 울어 젖히는 매미들. 참 오랜만이다고 잘 왔다고 내 귀에 확성기를 대고 노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귀국 첫날 모든 것들이 다 낯익은 건 아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낯섦과 마주했다. 엄마는 올해 초에 허리를 다쳐서 두 달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계셨다. 나는 그때 물리적인 거리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당장 달려와서 엄마도 보살피고 집안일도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우리 사이의 태평양이란 호수는 당장 달려오기에는 너무 넓었다. 몇 달이 걸려 뒤늦게 도착한 딸을 현관으로 나와 반기시는 엄마를 본 순간 나는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엄마가 그사이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엄마의 굽은 등은 반가움을 밀쳐내고 내 가슴속에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나는 애써 먹먹한 마음을 추스르느라 수선스럽게 바리바리 싸 온 선물들을 깨내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고관절수술을 하신 아버지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살이 많이 빠져서 수척해 보이셨고, 뒤뚱뒤뚱 걸으시는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아버지는 평생 잰걸음으로 동네를 날아다니셨던 분이다. 그래서 엄마의 소원은 다른 부부들처럼 아버지와 나란히 함께 걷는 거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가 엄마뒤에서 뒤뚱뒤뚱 힘들게 쫓아오신다. 두 분이 어깨 나란히 다정하게 걸을 기회를 영영 뺏아가 버린 세월이 야속했다. 시애틀에서 뵌 게 불과 2년 전인데. 노부모님의 시계는 그 사이 엄청난 가속도가 붙어서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엄마표 밥상을 한사코 내일 아침으로 미루고 나는 침대에 엄마와 나란히 누웠다. 아버지가 큰 딸에게 엄마 곁을 양보하셨다. 엄마는 이때다 싶어서 그동안 쌓아 놓았던 이 아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셨다. 2년, 730일어치의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졌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매주 한두 시간씩 화상통화를 하지만 그래도 옆에 앉아서 얼굴 맞대고 할 이야기들은 또 따로 있기에, 엄마는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신 것 같았다. 아버지와의 사사로운 부부싸움에서부터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지만 그 연세 부모님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그런 고민들도 있었다. 인생 후반부에서 생의 마지막을 잘 준비하고 싶은 엄마의 솔직한 걱정을 털어놓으셨을 때는 엄마가 너무 가여웠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이제 엄마의 하소연은 자장가처럼 나긋나긋해지고 창밖의 매미소리도 점점 잦아든다. 눈꺼풀이 무겁다. 온몸이 스르르 녹아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