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구 따라 시애틀에 온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 사이 한국은 정말 한국스럽게도 많이 변했고 이제는 문화강국으로서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 나는 이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일단 내 나이가 들통이 나고,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비교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 말고는 다른 말로도 대체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바로 지금, 지난 20년 동안 내가 겪은 한국에 대한 급격한 인식의 변화를 설명하려면 이 말이 제격이다.
2002년 월드컵의 뜨거웠던 열기를 뒤로 그 해 여름에 나는 시애틀에 도착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그때 만난 사람들 열의 아홉은 꼭 이렇게 물었다. “남한 아니면 북한, 어디에서 왔어?” 나는 내 조국을 떠나고서야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한국이 아니라 남한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지금도 각종 다양한 서류에서 요구하는 출생국을 표기할 때 무심코 K 쪽에서 헤매다가, ‘아차’하고 깨닫고 마우스를 아래쪽으로 한참 더 굴려서 South Korea에 클릭한다. 그 당시에 미국사람들에게 한국은 한국전쟁이 전부인 나라였다. 한국에 관한 유일한 콘텐츠라고는 70, 80년대에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만든 TV 드라마, MASH가 있었다. 한국전쟁 때 미군 야전병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담은 드라마이다. 한국이 배경인 드라마인데 한국인 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등장하는 한국 여성들은 기모노를 입었고 남자들은 베트남식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한국은 없었다. 이 드라마가 인기가 많아서 2000년 초까지도 꾸준히 재방영되고 있어서인지 미국인들에게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여전히 어렵게 살고 있는 그런 나라였다. 대중매체의 파급력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한국인 캐릭터가 미국 공중파채널에 등장을 하게 됐다. 바로 ABC 미니시리즈 2004년에 시작한 LOST이다. 시즌 6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 한국인 캐릭터를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 배우가 연기했다.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남편역을 맡은 데니엘 대 김은 한국계 미국인이라 감회가 좀 덜 했지만, 부인역을 맡은 김윤진 배우는 정말 할리우드에 첫 발을 내디딘 본토박이 한국배우였다. 그리고 비중이 제법 컸던 그 역을 멋지게 잘 소화해 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도 여전히 한국에 대한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데니엘 대 김의 고향이 남해로 묘사됐는데, 어부인 그의 아버지는 베트남 밀짚모자를 쓰고 바다가 아닌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잔뜩 기대했던 나는 그 장면들에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한국은 그저 아시아 어디쯤에 있는 나라들 중의 하나였다. 랜덤 하게 지목됐을 뿐 그 나라가 베트남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사실 별 상관이 없었다.
2000년 중반 무렵에도 이미 많은 한국제품들이 미국시장에 들아와 있었다. 삼성가전제품이 매장에서 팔리고 있었고, 거리에는 현대자동차가 제법 눈에 띄었었다. 한국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내가 현대차가 메이드인 코리아라고 얘기하면 모두들 놀라면서 당연히 일본차라고 생각했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다 보니 굳이 한국제품임을 설명하지 않는 게 그 당시 한국제품 마케팅의 기본이었다. 그때는 일본제품으로 착각되는 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됐었으니까. 아마존 쇼핑몰에서 K-Beauty, K-Food, K-Fashion 등 K-검색 키워드가 휩쓸고 있는 요즘의 마케팅 101을 20년 전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
내가 시애틀에 처음 왔을 때 나를 궁금하게 하는 게 하나 있었다. 데리야끼식당들이 거의 모두 한국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본식 데리야끼는 저렴한 대중음식의 하나로 인기가 많다. 간단히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햄버거 대체음식정도라고 할까. 그런데 그 데리야끼식당의 99%를 한국인들이 운영한다. 대학원 다녔을 때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데리야끼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식당 주인한테 물어봤다. “왜 한국사람들은 한국식당을 안 하고 데리야끼식당을 하는 거예요?”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누가 한국음식을 먹어? 한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 아니면, 한국식당 하면 다 망하지” 그때 망치로 크게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렇다. 장사를 하는 데 사람들이 찾는 걸 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한국음식은 한국인만 알고 먹는 그런 음식이었다.
김치, 갈비, 불고기는 이제 미국사람들도 정확히 발음할 줄 아는 그런 인기 메뉴가 되었다. 최근엔 김밥까지 그 대열에 올라섰다. 김밥을 보고 스시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스시와 다르다고 열심히 설명을 안 해도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한 미국친구가 내게 특별한 부탁을 했다. 자기 아들의 여자친구가 잡채를 좋아하는데 잡채 만드는 걸 가르쳐 줄 수 있냐는 것이다. ‘와 이젠 잡채까지!’ 나는 그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잡채를 만들어서 함께 나눠 먹었다. 앞으로 혼자서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게 레시피도 만들어서 줬다. 이렇게 미국친구들이 부탁할 때마다 만든 한국음식 레시피들이 하나둘씩 쌓여가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불닭라면은 이제 작은 동네슈퍼에서도 살 수 있다. 그리고 요즘 제일 핫한 아이템은 단연 냉동김밥인데, 코스코나 트레이더 조 같은 대형마켓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직도 불닭라면과 냉동김밥을 먹어보지 못했다. 불닭라면은 엄청 자극적이라는 주변의 만류에 굳이 시도하고 싶지 않다. 냉동김밥도 마찬가지이다. 김밥은 말아서 바로 먹어야 제맛이지, 굳이 냉동된 김밥을 사 먹고 싶지 않다. 이제 미국인들은 내가 선호하지 않는 이런 한국음식들에까지 열광하고 있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k-문화열풍은 점점 다양한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한참 틱톡에 빠져있던 큰 애가 요즘은 만화에 빠져서 매일 핸드폰으로 만화를 본다. 이곳 미국도 만화나 애니메이션 쪽은 아직까지 일본이 꽉 잡고 있다. 보통 일본만화가 먼저 인기를 얻으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 수순을 밟는다. 사실 일본문화가 세계전역으로 퍼지게 된 데는 만화/애니메이션의 공이 제일 클 것이다. 지난주에 큰 애가 만화책을 산다고 해서 서점에 같이 갔다. 큰 애는 ‘MANGA(만화의 일본식 발음)’섹션에서 가서 찾기 시작했다. 알파벳순서로 정리돼 있는데 자기가 찾는 게 없다고, 요즘 핫한 시리즈인데 없을 리가 없다고 했다. 나는 또 다른 섹션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옆쪽의 책장들을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서너 책장 건너서 ‘MANHWA’라고 쓰여있는 섹션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한국만화책들?' 내 예상은 맞았다. 그 섹션에는 한국작가가 쓴 만화책들만 따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 대형서점에 한국만화가 일본만화와 차별화되어 한자리를 딱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큰 애가 찾던 만화도 ‘나 혼자만 레벨업’이라는 한국만화였다. 이제 망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 만화. 만화라는 그 간판은 그날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헬스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로비 쪽으로 걸어 나오는데 너무 낯익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아모르파티 아냐’ ‘에이, 설마?’ 걸음을 멈추고 다시 주의 깊게 들었다. 맞았다. 김연자의 시원한 그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 소리를 따라 복도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에어로빅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20여 명의 사람들이 노래에 맞춰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난 시애틀근교의 한 헬스센테에서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를 만난 것이다. 피부색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여서 김연자의 열창에 맞춰서 온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BTS,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는 이제 너무 진부하다는 듯 그들은 K-pop의 언더독 김연자의 아모르파티에 온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렇지. 에어로빅하면 아모르파티지!’ 나도 모르게 너무 신이 나서 하마터면 복도 한복판에서 몸을 흔들어 댈 뻔했다.
영화, 음악, 드라마, 음식, 문학, 만화, 화장품, 이젠 한국콘텐츠가 장악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 이 열풍이 언젠가는 잠잠해질지 모른다. 일본문화열풍이 그랬듯이. 어쩌면 역풍으로 혐오의 시기가 올 수도 있다. 대중들의 취향은 참 변덕스러우니까. 나중에 어떻게 되든, 미국에 사는 한국인인 나에게는 어쨌든 아주 편리한 세상이 됐다. 이제 더 이상 나한테 남한에서 왔는지 북한에서 묻는 사람은 없고, 나의 조국이 어떤 나라인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 대신 나는 대신 이런 질문들을 받는다.
“우리 애들이 한국에서 쇼핑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자주 한국을 방문해. 얼마 전에도 한국에 갔다 왔는데, 이번에는 큰 캐리어를 세 개나 준비해 갔어. 비어있던 캐리어에 한가득 채우고 돌아와서 너무 행복했어.”
“이번 휴가 때 한국에 처음 가는데, 서울에서 어느 동네에 묵는 게 좋을까? 그리고 서울 말고 다른 도시도 가고 싶은데 추천하는 곳 있어?”
“나도 한국 가고 싶은데. 다른 것보다 제일 하고 싶은 건 피부과에 가서 시술을 받는 거야. 너 다음에 언제 가니? 너랑 같이 갈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