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의근육 Apr 10. 2023

고급 피자 사주세요

인간의 첫 입맛

난 모유 수유에 실패한 엄마다. 조리원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도전했던 젖 물리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기가 빨대 듯이 알아서 먹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아기는 나보다 젖병의 실리콘을 더  편안해했고, 유축기힘들게 모유를 모아서 한 달 남짓 수유를 해보았지만 엄마의 젖은 이내 마르고 말았다.


그렇게 분유로 키운 아기는 이유식을 거쳐 서서히 일반식을 먹게 되었는데, 이 놈이 어느 순간부터 자기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을 주면 뱉기 시작했다. 갓난쟁이 시절에는 주는 대로 먹었던 순한 아이였는데, 씹지 않고 뱉으면 된다는 위대한 발견을 한 후 거부의 의사 표시를 확실히 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음식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식탐이 없는 이 아이는 도통 쌀을 먹지 않는다. 이유식을 억지로 먹었던 트라우마라도 있는지 쌀밥을 거부하는 통에 파스타와 온갖 국수가 주식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평생 먹을 짜장면을 최근 1년 동안 모두 먹은 듯하다.


입맛은 얼마나 섬세하고 정확한지 음식 위에 살짝  뿌린 통깨도 허락하지 않고, 쌀국수를 먹을 때는 숙주  몇 가닥이라도 입에 들어가면 싫다고 뱉기 일쑤다.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다.


하루는 동네 배달 피자를 먹는데, 아빠의 최애음식 고구마 피자를 맛없다고 단칼에 뱉어 버렸다.

 

여보, 얘는 이런 피자 안 먹어.
이건 피자가 아니라 고구마빵이지.

내 말을 믿지 않았던 남편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고구마 피자가 제일 맛있다고 평생 믿었던 사람이 30개월 아기보다 더 초등학생 입맛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아이는 트러플 오일이 뿌려진 화덕 피자를 좋아한다. 앙금빵 보다 담백한 발효종 식빵을 잘 먹고, 인스턴트 소스의 맛과 육수 맛을 구분한다. 소시지나 햄에서 나는 향이 싫은지 핫도그도 먹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두 소시지나 단 것을 좋아하는 줄로 알았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입맛이 까탈스러운 잘 안 먹는 아이로 보일 수 있으나, 어쩌면 인간은 인공적인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고 어느 정도 미식의 혀를 갖고 태어난 것인가.

밥 안 먹을 땐 굶기는 게 최고라기에 아무것도 주지 않았더니 이 녀석은 물로 배를 채운다. 먹기 싫은 걸 먹느니 차라리 물을 먹겠다는 그 다부진 행동에 나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식사  시간만 되면 상전 모시듯 아이의 눈치를 보는 철저한 을이 되어버린 엄마는 그날도 무엇이 먹고 싶냐고 아이에게 먼저 물었다.


고급 피자 사주세요


고급이라는 말의 뜻은 알고 말하는 건지 기저귀를 차고 고급 피자를 당당히 주문하는 30개월 인간의 한 마디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실소를 터트렸던 순간이었다. 파주 헤이리 화덕피자 전문점에서 먹었던 양송이 트러플 피자 정도는 돼야 먹겠다는 뜻이리라.


이 별난 아이를 보면서 인간은 본래 자연에서 나온 재료 본연의 맛을 좋아하고, 순수한  미각을 안고 태어났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엄마 모유에서 느꼈을 인간의 첫 입맛은 부드럽고 순수했으나, 점차 첨가물이나 자극적인 조리법의 음식에 익숙해지면서 순수했던 혀를 잃어가겠지. 신선하고 값비싼 재료를 구분하는 너의 고급스러운 입맛 덕분에 아무거나 막 먹고살았던 엄마는 난감하지만...












 
















작가의 이전글 유튜브도 삭제해 보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