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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트인바다 Jun 04. 2021

사과할까요? 무시할까요?

<이 안에 너 있다.>

 달콤 살벌이라는 말이 어울리던 신혼일기를 미처 다 쓰지도 못한 채 그 사이, 연년생을 둔 엄마가 되었다. 결혼 4년 차인 우리는 또다시 달라진 삶의 패턴에 적응하고 새롭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느라 신혼 초창기 때만큼이나 격동의 시간을 겪고 있다. 오늘 밤도 그러한 나날들 중 하루일 뿐인데 쓸데없이 예민해져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만 남긴 것 같다.

 

사과할까요?

 시계는 자꾸만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쉽사리 잠이 들지 않는다. 소파에 누워 뒤척이다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었다. 역시 마음을 정화하는 데에는 글만 한 게 없다. 어쩌면 새벽 감성으로 오락가락할 나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잘 다듬어지지 않은 글에 내일이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붙잡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새벽, 브런치가 아니면 누구와 이 번민의 시간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마음속 끝의 끝까지 토해내면 대부분의 문제는 사소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오늘 밤은 타자를 치지 않을 수가 없다.




 사건의 발단은 밤 11시가 다되어 귀가한 남편 혹은 육퇴 후 체력 방전이 된 나. 야근 후 늦은 저녁식사를 하며 술을 걸친 남편이 이내 못 마땅한 나는 빈정대고야 말았다. 맞다. 나는 실로 빈정거렸다. 사실 요즘 남편이 회사에서 좀 곤란한 사정이 있고, 그 와중에도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과 오늘 아침, 전날 먹고 남은 설거지를 해놓고 7시에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고마움과 짠함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왜 빈정거렸을까?

 내 마음을 가만 들여다보니, 나는 상대방을 미안하게 만들어 나의 노고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코로나 마감시간에 맞춰서 퇴근을 한다는 둥, 술 안 마시고 왔으면 인정한다는 둥 일부러 남편을 긁어 나의 고단함을 알리고자 했다. 사실은 미안하단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편이 부부 사이에 훨씬 도움이 될 텐데 말이다. 분명 내가 '고생했어, 힘들었지'라고 말했으면 '네가 더 힘들지, 고마워'라고 해줬을 텐데.. 빗나간 투정은 남편의 마음에도 상처를 냈고 그 상처는 그대로 반사되어 내게로 돌아왔다.

 

무시할까요?


그럼에도 나는 왜 여전히 사과하기를 망설일까?

모든 걸 품어주고 싶으면서도 반대로 모두 다 이해받고 싶은 미성숙한 내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첫째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씻지도 못했고, 급히 퇴근하느라 못다 한 회사일들을 아이가 잠이 든 늦은 밤 해야 하는 현실. 야근 후 밥만 빨리 먹고 올 수는 없었냐는 원망. 내 마음에 남은 이런저런 복합적인 마음 때문에 '이건 미안한데'라며 토가 달린 반쪽짜리 사과를 하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번뇌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애초부터 알고 있던 (그러나 수긍하고 싶지 않던) 해답에 근접해진다. 모노드라마를 찍는 것처럼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여 혼자 비련의 여주인공도 되어보고 상상 속에서 불같은 화를 내다보면 결국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미안함도 전하고 싶고 내 마음도 알아줬으면 하는 나의 본심, 배우자와의 언쟁은 오래가서 좋을 게 없다는 진리, 소중한 나의 인연, 행복하게 살기만도 부족한 시간.

 늘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으면서도 왜 항상 같은 과정을 거치는 건지.. 그래도 그러면서 삶의 지혜를 조금씩 쌓아나가는 거겠지? 내일 아침 눈을 뜨면, 군더더기 없이 사과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짧고 명료하게 전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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