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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26. 2019

당신의 당연한 출근길을 위하여

지하철 기관사 A 씨 인터뷰

서울의 아침 출근길, 지하철이 연착되면 재해 현장을 방불케 한다. 승강장의 사람들이 일제히 전화기를 들고 이미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동료에게 자신의 상황을 다급히 전한다. 열차가 안 오는 게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최대한 몸을 굽혀 죄를 지은 것처럼 고하는 사람도 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지 않을 때 우리가 겪는 혼란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여기 우리의 당연한 일상을 위해 가장 어두운 세상을 앞장 서서 통과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업무 스케쥴처럼 지하철 터널 안은 낮과 밤의 구분이 없다. 수십만의 출퇴근길을 책임지는 지하철 기관사 A 씨의 이야기다.


Q. 안녕하세요 기관사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1974년 8월생이고요. 남들처럼 살면서 대학교에 진학해 나름대로 목표를 잡고 전자과를 졸업했습니다.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 지금은 전공과 달리 지하철 0호선을 운행하고 있습니다.


Q. 어떻게 지하철을 운전하게 되셨나요?


A. 친구네 놀러 갔는데 친구의 아버님이 역장님이셨어요. 철도 공무원 시험이 있다고 알려주셔서 지하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됐죠. 당시엔 서울과 부산만 지하철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서울지하철 중에서도 1~4호선은 서울지하철공사(現 서울메트로), 5~8호선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속하더라고요. 그중 서울도시철도공사 채용이 있어서 지원했고 운이 좋게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시기가 외환위기 때였어요. 합격한 사람 중 절반이 입사를 못했죠. 저도 구조조정으로 입사가 늦춰져 00년 0월에 가까스로 입사했어요.


Q. 우여곡절이 많으셨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기관사님의 아침은 보통 몇 시에 시작하나요?


A 그때마다 달라요. 저희 같은 경우엔 ‘교번제’를 시행하는데 쉽게 말해 지하철 운행시각에 맞춰서 출근과 교대시간을 정하는 거죠. 아침에 출근할 때도 있고, 저녁에 출근할 때도 있어요. 보통 운행시간 30분 전에 출근하고요. 제일 이른 아침 출근시간이 오전 6시 반이고 그 뒤로 5분에서 10분 단위로 다음 근무자가 출근해요. 맨 마지막에 출근하는 기관사가 아마 낮 12시 20분 정도 될 겁니다. 그러다 보니 기관사마다 출근 시간이 계속 달라지죠. 저녁 늦게 출근하는 기관사가 대부분 밤을 새고 아침 운행을 자주 해요. 저녁에 출근할 때는 오후 5시부터 해서 오후 9시 반 혹은 10시 반까지 출근하고요. 특히 출퇴근 시간에 전철 간격이 굉장히 좁거든요. 이때는 앞 전철 끄트머리를 보고 갈 정도로 운행 열차가 많아요.

 

Q. 어느 직업보다도 시간을 엄수해야 하는 일인 것 같네요. 원래부터 이렇게 시간 관리에 철저하셨나요?

 

A. 사실 많이 노력했어요. 맨 처음 입사했을 때는 시간에 너무 신경 쓰다 보니 밥 먹는 것을 비롯해 심지어 생리현상까지도 운행 시간에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로 출근하고 운행하면서도 위와 장에 계속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오랜 경력의 가관들을 보면 신체적인 리듬이 열차 스케쥴에 따라 자연스럽게 맞춰져요. 저도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결 방법을 터득하게 되더라고요.


Q. 아찔한 순간도 많으셨겠네요. 기관사님만의 시간 관리 비법이 있다면?


A. 취미생활이 큰 힘이 돼요. 취미생활이 있으면 여가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충실하게 쓸 수 있거든요. 그러면 업무 시간이 계속해서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리듬을 가질 수 있어요. 우리 회사 직원들을 보면 텃밭을 가꾸는 사람도 있고, 배트민턴을 치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어요.

 

Q. ‘바쁠수록 한 가지 일을 더 하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보통 한 번 운행하면 어느 정도 열차 안에 계시나요?


A. 매번 달라요. 운행 자체를 ‘사업’이라고 부르는데 전반, 중반, 후반 사업이 있어요. 우리끼리 보통 ‘다이아’(노선표 상 운행 구간의 모양이 다이아몬드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라고 불러요. 예를 들어, 5호선은 영등포역에 승무사업소가 있어요. 승무사업소는 기관사들이 출퇴근하는 곳이자 근무 교대를 하는 곳이죠. 여기서 출발해 마천이나 상일동까지 크게 한 바퀴 운행합니다. 이 구간이 75km 정도 돼요. 이걸 ‘전반사업’이라고 해요. 어떤 날은 전반사업만 타고 마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날은 180km까지 운행하는 날도 있고요. 아무래도 사업 간 여유가 있어서 휴식 시간이 보장되는 날이 좋죠. 이런 날은 ‘사업이 좋다’고 얘기합니다.

 

Q. 아무래도 고된 일일 것 같은데… 힘들지 않으세요?


A. 솔직히 힘들 때가 많죠. 주말은 물론 명절에도 일하고, 남들 다 잘 때도 일하고… 이런 기분 느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남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시간에 쉬면 막상 쉬지만 좀처럼 쉬는 느낌이 나질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기계발이나 취미활동, 심지어 수면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죠. 또 어쩔 수 없이 불규칙한 생활을 하다 보니 불면증에 걸린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회사를 다니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데 오히려 우리는 그 반대죠. 또 불면증이 잦은 이유 중 하나는 기관사들이 휴식하는 장소가 계속해서 바뀐다는 점이에요. 근무 시간에 따라 세 곳에서 자는데 개인적으로 편한 순으로 꼽자면 승무사업소, 차량기지, 주박지 순이에요. 주박지는 쉽게 말해 임시 차고지예요. 새벽 출근길에 열차가 운행될 때 종착역부터 출발해서 오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잖아요? 그러니까 일정한 간격으로 열차를 세워 놓는 거예요. 주박지에서 잠을 자는 기관사가 5시 반에 첫차를 운행하기도 하죠. 저의 경우엔 주박지에서 잘 때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Q. 그래도 2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오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불면증 방지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


A.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최대한 노력하죠. 불면증이 심한 사람의 공통점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거나 못한다는 점이에요. 특히, 낮잠을 많이 자는 것을 경계해야 해요. 저는 야간 근무를 하고 아침에 퇴근해도 2시간 이상 자지 않아요. 사실 기관사들은 육체보다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매일 똑같은 일을 하다 보니 타성에 젖는 경우가 많죠. 자신이 철저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건강을 잃기 십상이에요.

 

Q. 그렇군요. 분위기를 좀 바꿔서요. 이 일을 하시면서 언제 가장 좋으셨나요?


A. 음…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건 승객 한 분에게 노트북을 찾아줬을 때? 아, 그리고 명절에 또는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각에 일한다는 그 자체에 뿌듯함을 느꼈던 적도 있었어요. 우리 아니면 또 누가 이 시간에 이 일을 하나 싶기도 하고요. 동료 기관사 중에는 자살을 막은 일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걸로 표창을 받거나 진급한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사실 사고는 없는 게 가장 좋겠죠. 다행히 저는 아직 한 번도 사고가 없었습니다.

 

Q. 그야말로 ‘무사가 훈장’이 되는 일인 것 같네요. 그밖에 또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A. 우리끼리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 많이 해요. 업무 자체가 안전해야 하고 이상이 없어야 하는 게 우리 본연의 일인데, 무언가 일이 났다는 것 자체가 안 좋은 일일 수 밖에 없거든요.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일을 꼽자면… 승객들에게 본의 아니게 불편을 드렸던 죄송한 기억이 먼저 떠오르네요. 한번은 제가 운행하는 열차의 맨 뒷 량(열차 칸) 제동장치가 기계 이상으로 고장이 난 거예요. 열차 안에 타는 냄새가 퍼졌죠. 다행이 다친 분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또 하나는 공덕역에서 있었던 일인데 열차 내 방송 버튼이 출입문 버튼 근처에 있었는데, 방송을 하려다 실수로 출입문 버튼을 눌러버린 거예요.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닫히면 충격이 꽤 커요. 그때 한 대학생이 다쳤죠. 출입문 모서리의 검정 고무 패킹에 뒷목이 쓸려 자국이 남고 살이 빨개졌더라고요. 너무 죄송했죠.


Q. 1분 1초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이네요. 반복 업무 속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란 고문에 가까운 일일 것 같아요.


A. 한번 사고가 나면 인명사고나 대형사고로 번질 위험이 다분하니까 항상 긴장해야죠. 한번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돌이킬 수도 없고요.


Q. 지하철을 운행하면서 문자 메시지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메시지가 있다면?


A. 제가 존경하는 분의 말씀을 승객 여러분께 열차 내 방송으로 전하곤 해요. 그러면 가끔 ‘이 방송을 듣고 하루가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라는 답장이 오는데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Q.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도입됐지만 무인지하철이 점점 늘어나면서 지하철 기관사도 AI가 대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A. 선진국에서는 이미 무인지하철을 보편적으로 운행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요. 물론 인천 2호선, 신분당선, 우이선(2량 열차)처럼 무인으로 운행하는 노선이 이미 있지만 전면 도입되기에는 선행돼야 할 것이 많아요. 예를 들어 ‘내가 먼저여야만 하는 질서’를 없애는 의식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고 봐요. 무인자동차는 소수의 탑승자가 이용하지만 무인지하철은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이용하기 때문에 더더욱 안전이 중요시 돼야 합니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4~6량 열차로 무인운행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지하철은 대부분 8~10량이니까 무인지하철을 운행하려면 열차 자체의 길이도 좀 더 짧아져야 하겠죠. 아울러 사업구간을 세분화하는 것도 필요하겠네요.


Q. 끝으로 기관사가 되기 위해 어떤 자질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A. 창의적인 사람은 안 맞을 것 같아요. 반복된 일만 하는 따분한 직업일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고지식한 사람이 잘 맞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기관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매뉴얼을 따르지 않는 거거든요. 비상 시 매뉴얼이 있는데 고지식한 사람은 이걸 잘 지킨단 말이죠. 매뉴얼 자체는 따르기 어려운 절차가 아니지만 사고 시에 하나라도 빠뜨린다면 책임 소재가 기관사에게 분명하게 돌아가죠. 기계에 조종 내역이 모두 기록되기도 하고요. 따라서 원칙주의, 꼼꼼함 그리고 실수는 보완하되 마음에 담지 않는 대범함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또 여가 시간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직업이라서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기관사가 되려면 완벽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웃음)


A. 반면에 요즘 어디서나 요구하는 의사소통 능력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한 번은 시민들에게 기관사의 인상이 어떤지 직접 여쭤본 적이 있어요. 말이 없고 무뚝뚝하게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과 의사소통은 잘 못하더라도 기계와의 소통을 잘 하면 됩니다. 오늘 인터뷰도 사실 처음이거니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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