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기 앞서 마땅한 마인드셋
최재천·안희경 《최재천의 공부》를 읽고
울림이 깊은 책을 읽었을 때마다 독후감을 쓰기가 어렵다. 알량한 문장으로 내가 느낀 감동이 함부로 축소될까 봐서다. 《최재천의 공부》를 읽고 나서도 그러했다. 읽은 지 약 3주가 지난 뒤에야 비로소 이 글을 쓴다. 딱히 읽어줄 사람도 없는 글일 테지만 최대한 온전하게 느낀 바를 남기고자 한다.
사보 기자였을 당시 인터뷰를 거듭하며 느꼈던 점인데, 깊이 배운 사람에게는 분야를 불문하고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기서 '깊은 배움'의 기준이란 학위, 직업을 떠나 한 분야에서 압도적인 실력과 정보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수시로 부름을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첫 번째 공통점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뚜렷한 주관을 밝힌다는 점이다. 오랜 연구에서 비롯된 확신이 깊어져 자연스럽게 말과 글에 힘이 실리는 이유에서일 터다.
마찬가지로 《최재천의 공부》에서 '공부'란 배워서 앞서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전적으로 공존을 방향성으로 삼는 행위다. 사람과 사람 사이, 자연과 사람 사이, 자연과 자연 사이가 모두 포함된 공존이다. 이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도전'이 별수 없이 자본주의에 기반한 경쟁이 도사리는 현대인의 삶에서는 다소 동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성적, 스펙 쌓기 같은 '경쟁적 요소'를 뺀 공부는 비로소 그 본질을 드러낸다. 흥미를 찾아 파고들도록 만들며, 자칫 흩어져 보일 수 있는 경험들이 쓰임새를 갖춘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게 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큰 축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쓰고 생각하는 선순환 속에서 지식이 지혜로 그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지점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책에서는 그 효과를 본 사람들이 예시로 나온다. 최재천 교수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진행한 교양수업 '환경과 인간'을 수강한 대학생들이다. 거의 매주 있는 에세이 과제, 잦은 팀플 등으로 수업 강도가 높기로 유명했으나 수강생 중에는 이로 인해 관련 진로를 바꾼 것은 물론이고, 환경 운동을 위해 해외로 진출하거나, 소외 계층을 위한 입법을 위한 행동을 일으킨 학생도 많았다고. 사실 나부터도 지금 진행 중인 공부가 공동체에 기여한다거나 자연에 득이 될 리 만무하다. 기껏해야 팀에 약간의 보탬이 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방향성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이 말은 곧 언제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일 테니.
두 번째 공통점은 '지행합일'을 이룬다는 점이다. 이는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오래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삶이 반복되면서 편한 말투에서도 글이 보이고, 인터뷰이의 저작물에서도 말이 보인 경험이 꽤 자주 있었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행동의 궤적이 말과 글을 따라간다. 지행합일의 경지다. 고백건대 정준희 교수는 내가 만난 최고의 인터뷰이었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건전한 저널리즘을 구축하기 위해 '공영방송'에 기대를 거는 그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입법과 연구, TV 출연을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현재는 MBC <100분 토론>의 진행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최재천의 공부》를 읽으며 내내 그분의 모습이 보여 인터뷰이를 고르는 과거의 나의 안목을 한껏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요컨대 배운 바를 그때그때 저작물로 남기려고 노력하면서,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역을 파고들어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향을 찾는 것. 요즘 여러모로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이런 동기를 만들 수 있는 것 자체로 고마운 일인 듯하다. 늘 그렇듯 첫발이 다음, 그다음 발을 내딛는 추진력을 만든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