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6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안양천 오리는 카메라를 보는 법이 없고

by jd Mar 21. 2025

아직 그늘진 거리는 선득하지만, 볕 아래서는 따뜻한 편이다. 걷기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요 며칠 점심을 함께 먹은 팀원들과 안양천에 갔다. 탁 트인 전망을 보며 산책하기 좋은 곳인데, 돌다리를 건널 때 안양천에 서식하는 오리를 가까이서 보게 된다. 이들은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좀처럼 카메라를 보는 법이 없다. 다가가려고 하기가 무섭게 휙 하고 돌아선다. 햇빛을 받아 동그란 뒤통수에 목을 타고 흐르는 윤기를 뽐내자태에 괜히 약이 오른다. 한편으로 오리 입장에서 먹을 수도 없는 네모난 돌덩이 같은 것을 들이대는 기괴한 존재들이 얼마나 성가실까 싶기도 하다.


저 잔망스러운 뒤통수저 잔망스러운 뒤통수


멀어져가는 오리들에게서 누군가가 또렷이 봤을 내 모습이 비쳤다. 비효율에 무감해진 선배들에게, 연애할 기회를 만들 것을 촉구하는 지인들에게, 우선순위의 재정립을 당부하는 가족에게 나는 영락없이 '안양천 오리'다. 몇몇 특정인의 언행이 시작되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전에 차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 그렇다고 무례하게 말을 끊거나 행동을 제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뇌에서 정보 유입 경로를 닫은 상태가 된다. 다만 어느덧 사회생활에 연차가 쌓이면서 '듣는 시늉' 정도는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서 겉에서 보면 이야기를 잘 듣고 답하는 모양새다.


확실히 듣는 데 게으르면 오해가 생긴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에는 "오해를 없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 단순히 의미를 주고받는 데 그치는 작업을 너머 틀림없이 메시지를 이해해야 비로소 소통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스스로 소통이라고 부른 수많은 교류 중 소통이 되지 못하고 흩어졌던 것들이 얼마나 많던가. 안양천 오리의 오해를 해소하고 소통을 꾀하려면 빵가루라도 챙겨 가서 라포르를 형성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이 네모난 돌덩이(스마트폰)가, 들뜬 발걸음이, 절로 나오는 탄성이 무해하다는 신호를 줘야 할 것이다. 앞서 등장한 특정인들과 내가 소통할 수 있으려면 그들이 하는 말의 취지를 확실히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애석하게도 보통 이런 결심은 그들이 나를 애정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너를 위한 말이야" 같은 맥락의 클리셰 짙은 멘트와 함께 휘발되고는 한다.


작가의 이전글 답 없는 문제와 씨름하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