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생활 전반에 의지를 갉아먹는 '독소'들이 껴있다. 크게 3가지 측면에서 나를 죽이는 요소들이다. 이것들은 주로 나의 태만, 피로 누적,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계획을 죽이는 독소'다. 매일 자정이 다 돼서 귀가하는 생활이지만, 하루에 1000자 이상 쓰는 리듬을 꿋꿋이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치명적인 한 번의 맹독으로 나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안다. 바로 '귀가 후 곧장 침대에 몸을 누이는 행동'이다. 그러면 방 불을 켠 채로 잤다가 새벽 3시쯤 자괴감을 박차고 일어나서 나의 얕은 의지를 한껏 비난할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베고 눕는 이런 날은 대부분 꿈자리도 뒤숭숭하다. 계획을 죽이는 독소를 제거하려면 강박적으로 옷을 갈아입고, 최대한 빨리 씻고, 무의식적으로 노트북을 켜야 한다. 이 요법밖에 없다.
둘째는 '글과 말을 죽이는 독소'다. 어디에 갖다 붙여도 표현을 애매하게 만드는 단어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생각한다"는 동사다. 빼든, 대체하든 잃을 게 없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내가 "생각한다"는 표현을 독소로 인식하고 조심하는 것은 그만큼 버릇처럼 쓰게 되는 표현이기도 해서일 터다. 말에서는 "여러 가지로"라는 단어가 독소다. 언젠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떠올릴 시간을 벌기 위해 뱉은 말이었던 것 같은데, 억울하게도 시나브로 입버릇이 된 것 같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서부터 '여러 가지'의 정체를 꼭 한두 가지는 예시를 들어 밝히고자 한다.
셋째는 '관계를 죽이는 독소'다. '포기하는 마음'이다. 굳이 안 맞는 의견을 맞춰가며 서로 피곤할 일 없이 "네, 그렇게 사시면 됩니다"라고 지르며 갈라지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부터 갈등이 없는 선에서 차단하며 살아왔는데, 어느덧 돌아보니 그 기준이 나조차 미치지 못할 정도로 높아지는 경험을 했다. 스스로 교만했음을 증명한 격이다. 아직도 몇몇 기준은 허물지 못해서 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기제로 '수더분함'을 표방하며 산다. 실제로 어떤 경우에는 신경 쓰임에도 곧잘 신경 쓰지 않은 척하게 된다. 누군가에 대한 존경도, 꾸준한 관계도 결국 노력의 결과일 텐데, 그 노력이 다소 부족했음을 깊이 뉘우친다.
반성문 보다는 진단서를 쓰고 싶었다. 확실히 나는 3가지 디톡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