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무두절.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팀원들과 찜닭덮밥과 편의점 하이볼을 포장해 안양천 돌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사무실을 나선 것만으로 풀어진 분위기에서 하나둘 신경 쓰이는 일들이 입 밖으로 나왔다. 복잡한 업무, 결혼, 이사 등 녹록지 않은 세상사를 두서없이 꺼내놓다가도 한 번씩 눈앞에 펼쳐진 봄 풍경을 보며 "좋다"라고 내뱉는 시간이었다. 유쾌하지 않은 화제가 다행히 그렇지 않은 전경과 상충하여 묘한 위로를 얻기도 했다.
확실히 봄은 공공재다. 평일 낮에 안양천을 걸으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의 처지, 기분, 복장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 시간, 여기서만은 같은 것을 느끼고 얻어간다. 이제 막 채도가 높아진 우듬지, 수면 위로 올라 햇빛이 반사된 비늘을 보여주며 부대끼는 이름 모를 물고기, 그늘이 없는 지면에 차등 없이 내려앉은 볕...
해마다 극한으로 치닫는 여름 날씨는 누군가에게 전기세 폭탄을, 때로는 죽음을 놓고 간다. 겨울 또한 전기세를 난방비로 치환할 뿐 상황은 비슷하다. 처신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이 가혹하지 않은 계절이다. 그러나 봄은 처지와 관계없이 평등하게 다가간다. 고작 1시간 내외인 점심시간을 쪼개 봄을 담으려 모인 행인들 틈에서, 외투가 얇음에도 체온을 지킬 수 있음에 고마웠다. 이내 앞으로 남은 이 계절이 얼마나 짧을지 가늠하며, 해마다 과학자들이 혹독할 거라고 겁을 주는 여름 걱정을 당겨서 하기도 했다.
봄은 사람 이름에 가장 자주 들어가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로써 미뤄보건대 '누구에게나 똑같이 따뜻한' 습성은 많은 이가 닮고 싶어 하는 장점일 터다. 그 감수성은 '누구에게든' 발휘되는 것이어서, 상대의 조건이나 처지, 반응에 따라 좌우되지 않아야 할 터다. 외투를 더 여미지 않아도 모두를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감싸주는 봄처럼, 상대의 태도나 상황을 바꾸려 들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분명 접근하기 어려운 경지다. 그럼에도 노력할 여지는 매 순간 있다고 믿는다. 이 봄만이라도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따뜻해지자고 작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