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라인 엄마는 힘들어
"Sideline Mom: Not Easy"
'헬리콥터 맘'을 아시나요? 자식들의 위를 헬리콥터처럼 떠다니며 모든 일에 간섭하려는 엄마를 부르는 미국의 신조어입니다. 이외에도 '타이거 맘' (호랑이처럼 엄하게 아이들을 훈육하는 엄마), '스노플로우 맘' (아이 앞의 장애물을 다 치워주는 엄마 ) 등 많은 유형의 엄마가 있는데요. 저는 그중에서 '사이드라인 맘'인 것 같습니다. 사이드라인 엄마는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며 사이드라인에 서서 열심히 응원을 하는 게 주요 특징입니다. 응원만 하면 되니 사이드라인 엄마 참 편하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사실 저의 고충은 엄청납니다. 불안과 걱정을 꽁꽁 숨기고 쿨한 척하다 보면 몸에서 사리가 한 사발은 만들어지는 기분이랄까요.
제가 자발적으로 사이드라인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16살, 14살 고등학생 두 아들이 저를 그 길로 이끌었답니다. 요 녀석들이 요즘 부쩍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제 인생이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엄마는 엄마 길을 가세요"입니다. "알아서 하겠다는 얘기"는 대개 안 하겠다는 얘기더라고요. 한국으로 치면 고3 수험생인 저희 큰아들은 제가 입시 설명회에 참석하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 가지 엄마가 그런데 간다고 제가 명문대 가는 거 아니에요.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라고 말합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 역할은 주로 밥 해주고, 운전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외국 친구들이 제게 이제 아이들이 다 커서 별로 손이 안 가겠다 하면, 저는 "I am my kids' personal Uber Eats and Uber taxi service - always on call" (24시간 전담 음식 배달 및 택시 서비스를 제공 중)이라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Uber Eats'는 '배달의민족', 'Uber driver'는 '카카오 택시' 쯤에 해당합니다. 저희 큰아들은 올초 운전면허를 따 혼자 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실기 시험에서 100점 만점에 99점을 받았는데, 본인이 20년 무사고인 저보다 운전을 잘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저는 아침 4:45분에 일어나 아이 새벽 연습 데려다줬다는 생색도 못 내게 됐네요. 아들은 자기 빨래도 직접 합니다. 물, 전기세 아까워 다른 가족 빨래랑 함께 하자고 하니, 빨래가 섞여있으면 골라서 개는데 시간이 더 든다고 비효율적이라며 제 제안을 단칼에 거절합니다.
이제 애들이 다 커서 제가 필요 없어졌나 보다 살짝 슬퍼지는 중이었습니다만 요즘 제게 새 역할이 하나 생겼어요. '아들의 공부 파트너'요. 다음 날 새벽 연습이 없는 날이면 가끔 아들은 제게 "엄마, 내일 아침에 저랑 같이 공부해 줄래요"하고 묻습니다. 지난 편 글에 제가 몸도 안 좋고 슬럼프 왔었다고 썼는데, 슬럼프에서 강제로 회복하게 해 준 것도 저희 큰아들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저희 아들이 "엄마, 도서관 갑시다" 이러는 거예요. 에너지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운동을 하는 저희 아들은 늘 휴식 시간과 공부 시간이 부족하거든요. 일요일 하루 유일한 휴식날에 쉬고 싶었을 텐데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아들 부탁에 제 대답은 오로지 하나 "예스" 뿐입니다. 아들이랑 도서관에 가서 앉아 있으니, 두통이 언제 왔었나 싶을 정도로 신기하게 아무렇지도 않아 졌습니다. 아들이 만병통치약입니다.
영어도 부족하고, 미국의 교육 시스템도 잘 모르는 제가 아들에게 해줄 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사이드라인에 서서 목청 높여 응원하고 경기장을 벗어나 잠깐 쉬는 시간에는 그늘이 돼 줄 뿐이지요. 제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저희가 '함께 자란다 (grow together)'는 표현이 더 맞겠습니다. 저희 두 아들들이 자신들의 이름처럼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멋진 청년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