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우주로 가는 문을 열며
목구멍 아래에서 쓴 맛이 올라온다.
기계처럼 꿀꺽 삼킨다.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다.
이 의식이 몇 번이나 더 남아있을지.
분명한 건,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취침 전 다섯 알, 비상시 한 알.
다 합쳐도 손바닥을 꽉 채우지 못하는 것들이 나를 살리고 동시에 절망하게 만들었다.
하늘은 너무나 청명했고, 나는 딱 그만큼 깊은 구멍에 처박혔다.
정확히 얼마나 되었는지 희미하다.
대략 세어보자면 대여섯 번의 겨울을 보내는 동안 매일 이어진 것 같다.
짧지 않았다.
손가락 다섯 개를 넘게 접어야 하는 시간 동안 고통스러웠다는 뜻이니까.
겨울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때가 되면 봄은 오니 알아서 꽃이 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한 생명이 피어나려면 상상 이상의 시간과 관심, 그리고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다.
그건,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스스로에게 관대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사람이 싫어졌다. 그리고 나 자신은 더 싫어졌다.
나는 매번 같은 지점에서 넘어졌고, 똑같은 마음으로 포기했다.
이번엔 다르다고 스스로 고무시켰지만, 희망을 높이 올릴수록 떨어질 때의 타격은 컸다.
사람이 싫다 못해 노래 한 곡 듣는 것도 내게는 버거웠다.
사람 목소리가 안 나오는 클래식만 들었고, 그마저도 지치면 적막 속에 나를 내팽개쳤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손바닥에 올려진 작디작은 약 몇 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게.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것에 주도권을 주고 이리저리 휘둘린다는 사실이.
인정하기 어려운 마음은 겹겹이 쌓여 무기력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링 위에서 백기를 들었다.
이 싸움에서 내가 졌으니 이제 그만 날 놔줘.
인내심, 꾸준함, 근성, 끈기, 성실함.
모두 나와는 데면데면한 단어였다.
어쩌다 만나도, 오래 함께하지 못했다.
나는 싫증도 잘 내는 사람이었다.
밤마다 구역질을 선사하는 그 몇 알에 쉽게 질렸고, ‘꾸준히’ ‘성실하게’ 먹지도 못했다.
낫겠다는 의지와 그냥 여기 주저앉자는 회피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건 늘 나였다.
가장 최악은, 터지는 새우등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었다.
‘이번에는’이라는 손톱만 한 기대는 ‘역시나’라는 한탄과 자조에 잡아먹혔다.
애초에 불공평한 싸움이었다.
내 머릿속 신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과학자였다.
그는 실험실에 처박혀 세상에 나갈 인간을 조립했다.
비커에 담긴 액체들이 마구잡이로 들이부어졌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인간사회에서 미니멀이 트렌드가 될 거라는 게 불현듯 머리를 스친 걸까.
신은 나를 만들 때, 정말 최소한의 것들만 넣어주었다.
그렇게 나의 재능은 미니멀리즘의 최정점으로, 불안과 우울은 맥시멀리즘의 극단으로 태어났다.
잠시나마 신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조차 감사할 줄 안다. 알긴 안다.)
모든 걸 안 주신 게 내심 미안했는지, 신은 나에게 작고 이상한 재능 하나를 넣어주었다.
재능이라 하기도 애매한 그건 바로 ‘쨉’이었다.
삼일,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결심하고 실천하게 만드는 재능.
결정적인 어퍼컷을 날리진 못해도 솜방망이 같은 쨉을 수 천 번 치는 작고 소소한 재능.
제대로 맞추지도 못했지만, 그 쨉들이 내 심장을 다시 두드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능력으로 나는 여러 밤을 눈물로 지새웠고
마침내 새로운 우주의 문 앞에 닿았다.
예상치 못한 눈빛 하나, 조용한 손길 하나로 인해.
나는 오래 무기력했고, 아주 가끔 쨉을 휘둘렀다.
힘없는 솜방망이가 뭘 할 수 있겠냐만은.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쨉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나의 누추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게 최선이었다. 이게 나의 방식이었다.
나는 몰랐다.
한 시간짜리 쨉도 쌓이면 최소 이틀 치는 된다는 것을.
그렇게 많은 것이 변할 시간 동안 개미만큼 쌓아온 쨉들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가는 길에 만난 몇 가지 사건들로 인해 내 오래된 우주의 계절은 끝이 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새로운 우주에 발을 딛고 있었다.
그곳은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깊은 구멍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곳이었다.
그곳에 익숙해지기까지, 나는 몇 번을 더 앓아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수많은 쨉들이, 결국 나를 새로운 우주에 데려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