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무기력의 무게

by Yoga Girl Sum

갈색 문을 열고 들어가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견뎌낸 의자 위에 앉았다.

푹, 하는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의자가 살짝 아래로 꺼졌다.

이제 내 무게도 여기에 새겨지겠지.

고개를 들어 맞은 편의 웃는 눈을 잠깐 보고 피했다.

매번 비슷하지만 늘 다정한 말투의 물음에 나는 답했다.


새벽 두 시면 눈이 저절로 떠져요.

심장이 너무 뛰어서 뻐근해요.


혹시 하는 마음에 혈압을 쟀다. 몸은 정상이었다.

적어도 ‘신체적인’ 능력은.

그 와중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괜찮은 척 들어섰지만,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빼곡히 꽂힌 의학서적들과 큰 모니터,

푸른 나무가 보이는 창가를 순서대로 쳐다보다

의사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던 그 순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여기서는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할 것 같았다.


‘아직은’ 약의 도움이 ‘꾸준히’ 필요하다며

약의 용량을 높일 것이라는 말을

의사 선생님은 참 다정히도 해주셨다.

비록 나는 의지박약의 불량 환자였지만

나의 의사 선생님은 참으로 끈기 있고 따뜻하신 분이었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고 나를 격려해 주셨다.


믿지 않았다.

환자가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숙련된 전문의의 상투적인 위로와 격려쯤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 지지부진함은 영원히 계속될 겁니다.

우울과 불안에 완치란 없으니까요.

이럴 수는 없지 않을까.


선생님의 말을 체감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손바닥 위 귀엽고 작은 알약들은

두통처럼 무거운 코끼리를 천천히 지워갔다.

나조차도 느끼지 못하도록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마침내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익숙해지고

외출이 조금씩 잦아질 무렵,

내 작은 노트에는 하얀 토끼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우리는 눈을 맞췄고,

나의 코끼리는 천천히 부서졌다.


그 코끼리는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서 살아온 존재였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심리처럼,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할수록 코끼리는 더 선명해졌다.

나는 자주 질식했고, 그보다 더 자주 가라앉았다.

코끼리와 함께 세상에 나와 서른 해가 되도록

이 구질구질한 동거를 끝내지 못했다.


나의 코끼리는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귀엽지도,

환상처럼 사랑스럽지도 않았다.

그 칙칙한 존재는 내 몸이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당당하게 굴었다.

내 몸에서, 내 자리는 없었다.


그 녀석은 닥치는 대로 나를 갉아먹었다.

운전석은 오래전부터 그의 자리였으니

나는 조수석이 맞았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이 자리는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시간은,

해로운 것에도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나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코끼리에게 툭툭 ‘쨉’을 날렸다.

그것이 나에게는 ‘독립운동’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나의 빼앗긴 들에 봄은 오지 않았다.

이 좌절과 무력함을 표현할 단어는 없었다.

나의 쨉은 힘이 없었고,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내 몸이 아닌 몸에,

내가 기생하며 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코끼리는 주인이었고, 나는 언제나 그의 부속품이었다.

코끼리의 승인 없이

나는 무언가를 결정할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그가 나에게 허락한 건 주로 불안의 바다가

몰려올 것을 알리는 빨간 경보음 정도였다.


나는 약을 먹을 때에도 '쨉' 기질을 발휘했다.

매번 약 먹기에 도전했지만, 길게 지속하지 못했다.

플라스틱을 녹여 휘휘 저어놓은 듯한 맛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올 때마다 나는 약을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기어가 선생님께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이제는 약을 성실히 먹겠다고 서약했지만,

역시나 오래가지 못했다.

약을 꾸준히 먹는 것조차 나에게는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 도전은 ‘무한히’ 지속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낙숫물에 바위가 갈라지듯,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코끼리도

조금씩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쨉’에 드디어 코끼리가 반응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몇 알이,

아주 느린 속도로 내가 앞으로 가도록 밀고 있었다.

너무나 미세했지만,

그 힘은 분명히 거기 있었다.

나는 아주 느린 속도로 새로운 우주를 향해 가고 있었다.

가는 줄 조차도 모르게.

너무나 느리고 미세해서

중간중간 손쉽게 포기하고 싶어 질 만큼.


내 쨉은 연약했다.

우직한 인내도, 묵직한 끈기도 아니었다.

그 작은 쨉은 몸에서 시작됐지만,

점점 내 마음에서 나가고 있었다.

익숙한 절망의 벽에 찍힌 아주 작은 균열.

그게 쨉이었고, 그 균열로 내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 연약한 솜방망이로도 나는 마침내

내 자리라 할 만한 곳에 도달했다.

작고 하얀 존재가 있는 곳으로.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