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숨으로 채워진 것_2024년
“디자인을 배워보는 건 어때?”
피곤에 절여진 파김치가 된 나를 보며
이제는 연인이 된 그가 말했다.
“관심있어 했잖아.
그리고 내가 봤을 떄 너,
충분히 감각 있어.”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어
다듬고 마침내 세상에 내놓는 것.
그것만큼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내 앞의 철조망은
여전히 두껍고 뾰족했다.
잘 모르겠어.
너무 늦은 거 같기도 하고.
나한테 그럴 능력이
있는 지도 모르겠는걸.
괜한 헛바람에
도박을 하고 싶진 않아.
그러기엔 내가 너무 지쳤거든.
그 말에 마음이 흔들린 건 사실이었다.
특히나 디자인 전공자에 현업 종사자인
그의 말에 설레었던 것도 맞다.
마치 봄바람에 몸이 붕 뜨는 느낌처럼,
나는 어느새 그럴 듯한
디자이너가 되어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있었다.
물론 나의 상상 속에서.
정말 나를 망설이게 한 건,
‘능력’보다는 ‘끈기’였다.
나는 끈기, 성실함, 인내심 이라는
단어와 낯가리는 사이니까.
(우리의 데면데면함은 현재진행형이다.)
나같은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규칙적으로 사는 것이 천성이라 생각했다.
그래야 ‘사회 구성원’으로서
‘직업인’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마음 한 켠에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유명 개그맨의 말처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것이니,
지금 최선을 다하라’는 마음으로
이 철조망을 넘을지.
달콤하지만 매일 나를 파김치로
만드는 안정감에 눌러앉을지.
어쩌면 이때부터 승패는
결정되었는 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보다 모험심 있는 유형이었고,
정규직이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험난한 정글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나의
철조망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첫 시작은 그가 사준 맥북이었다.
아주 간단한 영상 편집이 첫 번째였다.
가위로 오려 예쁘게 이어 붙이는 작업이
놀이처럼 재미있었다.
초보 수준의 작업에 벌써 들떠
어쩌면 생각보다 ‘감각’이란 것이
조금은 있을지도 모른다고 소리 없이 신나했다.
컴퓨터란 문명의 큰 변화를
처음 발견한 아이처럼,
디자인 툴 하나하나 이리저리 눌러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랜만에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꽃피었다.
이 마음 하나만으로도
철조망의 뾰족한 가시들을 제거하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해가 밝고,
이제는 정말 ‘디자이너’에
한걸음 더 다가가겠다는 의지를 끌어올릴 때,
그가 나에게 제안했다.
매일 아트 포스터 한 장 제작.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도 아직 걸음마인 나에게
아트 포스터 제작은
정말 새로운 우주 속 이야기였다.
동시에,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좀 못하면 어때,
그러면서 크는거지 라는 묘한 자신감도 들었다.
때로는 이런 가벼운 마음이,
별 것인 것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는 것.
그런 가벼움이,
결국 세상에 별것을 내놓게 해준다는 걸. 그땐 몰랐지만.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프로 디자이너들의 포트폴리오를 검색했다.
역시, 프로페셔널의 벽은 높았다.
내가 상상에서 그치던 것들을,
그들은 두 손으로 현실에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새삼 그들과 나의 갭 차이가
하늘과 땅 수준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적어도 땅에서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지 않은가.
나에게 그들은 보이지도 않은
저 높이에 있는 존재였다.
처음에는 그들의 작업물을 그대로 따라했다.
한 장의 포스터를 만드는데 하루가 다 지나갔다.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실력이 쌓이는지 의문만 키워가며,
그날도 나는 아이패드를 꺼냈다.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 얼마나 하기 싫었는지.
유난히 낮아진 자존감과 자신감에
희망회로보다는 부정회로로 탑을 쌓고 있을 때였다.
오늘은 따라하기 말고 다른 거 해보자.
못 그리는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펜을 들었다.
손이 가는대로 선을 만들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 무엇도 의도하지 않은 채.
그 순간만큼은 잘하고 싶다는
욕심 자체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펜을 떼고 화면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익숙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빠르게 과거를 훑어봐야 했다.
어디에서 본 이미지를
무의식 중에 기억하고 따라 그린걸까.
천천히, 동시에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아, 너구나.
그래. 너야.
마침내 나의 ‘숨이’가
온전히 얼굴을 드러내고 말을 걸어왔다.
안녕. 숨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