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성장시킨 책
1. 일을 잘하려는 노력만큼 일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는 노력을 내가 얼마나 했었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 일을 막 시작했을 때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했던 역량과 지금 내게 필요한 능력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주요 산업의 구조와 세계를 제패하는 기업이 변하듯이, 일을 잘한다는 것의 기준 또한 바뀔텐데 말이다. 야마구치 슈의 책을 찾아본 건 그런 까닭에서였다. 야마구치 슈를 알게 된 건 몇년 전 최인아 대표와 일에 대해 나눈 대담을 통해서였다. 덕분에 일의 '감각'이란 키워드를 그때 처음 강하게 인지했었고, 언젠가 야마구치 슈의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었다.
2.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로도 자주 거론되는 야마구치 슈의 대표작 <일을 잘한다는 것>과 <감성과 지성으로 일한다는 것>은 다른 책이만 꽤 긴밀히 연결돼 있다. 두 책의 요는 "필요보다는 의미를, 정답보다는 문제를 잘 찾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에서는 일의 기술보다 감각이 더 중요한 역량이다. 결국, 일을 잘한다는 건 자신의 감각을 따라 스스로 문제를 찾고, 생각하는 상을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만들 줄 아는 사람"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이 일의 감각에 대한 이론서라면, <감성과 지성으로 일한다는 것>은 일의 감각을 어떻게 발휘하는지에 대한 실용서 같았다. 나는 1년 먼저 출간된 <일을 잘한다는 것>을 먼저 읽었지만 읽는 순서는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 하지만 두 책은 분명 같이 읽었을 때 시너지가 난다.
3. 필요보다 의미가 더 중요한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건 그래서 무슨 뜻일까. 책은 말한다. 우리는 상품과 편리함, 정답이 과잉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문제=곤란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하지만, 지금 세상에는 '문제=곤란한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 매우 동의하는 부분이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로 보면, 가장 하위단계인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는 이제 시중에 나와있는 상품으로 충분히 충족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상품이 없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세상엔 이미 상품이 넘쳐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가치' 경쟁에서 벗어나 '의미(어젠더)를 담은 가치'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훨씬 희소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4. '의미가 있는 가치'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가치'와 달리 정답이 없는 시장이다."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라고 했던 고 스티브잡스의 말은 정확히 이를 대변한다. 필요와 정답이 있던 시대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리와 기술이 중요했지만, 의미와 스토리의 시대에는 감각과 센스가 뒷받침돼야 한다. 기술은 기본, 자신만의 감각 없이는 기업도 개인도 점점 생존이 힘든 시대가 오고 있다.
5. 필요의 시대에는 '아웃사이드 인'형이, 의미의 시대에서는 '인사이드 아웃'형이 일 잘하는 사람으로 불린다. '아웃사이드 인'형은 시스템과 업무 지시를 성실히 따르며 정답을 찾는 반면, '인사이드 아웃'형은 자신의 감각으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다. 자신의 논리에서 답을 찾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따른다. 의미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남의 지시를 따라서는 결코 만들 수 없다.
6.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각으로 일하는 '인사이드 아웃'형이 되고 싶어도 쉽게 그러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감각의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으로 봤다. "저는 제 감각에 따라 이번 프로젝트를 이런 방향으로 한번 해보겠습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회사원이 얼마나 될까. 내 감각은 A로 가라고 말해도, 객관적인 자료들(타사 레퍼런스, 고객 설문 결과 등)이 B를 향하고 있다면 B를 택하는 게 상식적으로 보인다. 책에서는 이를 '감각의 사후성' 때문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 개념이 매우 흥미로웠다.
"감각을 받아들이는 데 문제점이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감각의 사후성’ 때문이죠. 사후성이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나중에 회상하며 새롭게 해석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것이 장벽을 높이는 것이죠. 사전에는 목적과 수단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알 수 없어요. 나중에서야 뒤돌아보고 예전에 어떤 일을 했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기에 지금 나의 감각이나 행동양식이 형성된 거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감각이 중요하다고 느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죠."
7. 그럼에도 책은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이 길을 이끈다"고 말한다. 우선은 자신의 감각을 갖는 게 최우선, 그다음 감각에 따라 성과를 낸 경험을 하나씩 만들며 쌓아가는 게 필요하다. '이제 어떻게 될까?'보다 '(그것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라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습관을 들이는 것,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감각을 기르는 시작이다.
"저는 의지를 우선시하고 일관된 자신의 생각에 따라 일하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고 뜻을 관철시킵니다. 자신이 즐거우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지니, 점점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겁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이 점점 넓어져 실제로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동조하는 사람도 늘어갑니다. 스토리가 실행되어 가는 것이죠. 이런 흐름의 기점에 있는 것은 개인의 의지입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옳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처음 단계에서 정답을 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이거 잘되겠는걸!' 하는 마음가짐이죠."
8. 일의 감각이 개인의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건, 얼마 전 읽었던 매거진B 조수용 대표의 '일의 감각'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라 놀랍다. 조수용 대표 또한 일의 감각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이 일의 주체'라는 마음가짐이라 한 바 있다. 내적동기는 그 어떤 때보다 일 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