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트레일레이스 100K
2024년 09월 27일 밤 22시. 서울 수서행 SRT에 오른다. 긴긴 슬럼프를 지내오면서 올시즌 첫번째 울트라트레일레이스에 나서게 됐다. 올해 4월 부상을 겪으며 작년부터 조금씩 덮쳐오던 무기력이 폭발하듯 나를 완전히 잠식 시켜버렸다. 굉장히 길고 깊은 슬럼프였다. 운동량을 줄이다 못해 아예 끊어버렸다. 무언가를 하기도 싫어졌다. 단순히 부상에서 온 슬럼프만은 아니었다. 잠제되어있던 여러 불안들이 동시에 터져버린듯 하다. 우울한 기분에 이러다 말겠거니 생각했지만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았다. 움직여야될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멍하니 몇달이 지났다. 봄이 지나고 길고긴 뜨거운 여름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대로 아무런 의미없이 한해를 흘려보낼 것만 같았다. 뭐라도 좀 해라.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영원히 깊은 늪에 빠져서 질식 해버리질도 모른다. 말라버린 뇌를 적셔줘야 한다. 심장을 다시 가동 시켜야 한다. 어떻게든 동기를 부여해서 움직여야 했다. 신청을 해놓으면 강제적으로 라도 움직일수밖에 없을거다.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신청을 클릭했다.
울트라트레일을 대비해 그전에 연습겸 장거리 대회도 참가했다.
(https://brunch.co.kr/@hjh8070/106#comments 연습겸 참가하게된 울트라마라톤 50K)
8월 연습 겸 참가한 대회를 다녀 온 후에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가 지속 되었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도무지 운동할 기운이 안난다. 설상가상으로 추석연휴를 전후로 와이프의 수술로 일주일간의 부제와 연휴 마지막날엔 아들 동동이의 폐렴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운동을 할수 있는 상황이 안되었다. 그렇게 산악 훈련도 한번 하지 못하고 날짜가 다가왔다.
장수트레일레이스 100K. 거리는 101.9km. 획득고도는 5,790km. 제한시간은 29시간. 결코 쉽지 않은 코스다. 실컷 고생하면 정신을 차릴지도 모를일이다. 여행하는게 아니다. 이번엔 나태해져버린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시간이다. 준비가 안되어있을수록 더 좋다. 나에겐 더욱더 가혹한 환경일 될것이다.
2024년 09월27일 금요일 밤 22시. 나는 장수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위해 서울 수서역으로 간다. 대구에서는 가는 방법이 없어서 어쩔수없이 서울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기로 했다. 28일 새벽 02시에 출발하니 가는동안 잠을 자거나 휴식을 하면 될거 같았다.
트레일레이스는 챙겨야 할 짐들이 많다. 매번 하지만 할때마다 짐을 싸는게 어렵다. 결국 대충 다 쑤셔넣고 출근을 한다. 22시 퇴근후 여유있게 동대구 역으로 이동. 이번 한주동안 해야될일이 많아 쉬지도 못했다. 지금은 상당히 피로가 쌓여있고 수면도 부족한 상태다. 얼른 기차, 버스에 올라타서 쉬고 싶다.
최후의 만찬으로 햄버거를 먹고 서울로 출발. 눈을 감고 잠은 오지 않지만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수서역에 도착후 잠실운동장역으로 서틀버스를 타기위해 택시로 이동. 나와 같은 트레일 러너들이 한짐을 가지고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다. 빠르게 버스에 탑승후 눈을 감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 잠들지 못한채 버스는 서서히 출발을 했다. 차라리 빨리 해가 떳을면 좋겠다.
셔틀버스가 도착한 장수는 이미 많은 참가자들로 붐볐다. 7시 출발이니 빨리 장비검사를 해야 했다. 장비검사를 통과해야 레이스팩을 받을수 있다. 확인 하기 쉽게 미리 짐을 다 세팅을 해놨기에 빠르게 검사를 마쳤다. 내 번호는 1064. 이제 이걸 달고 출발하면 포기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 긴장감이라곤 없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걸 알고있다. 출발선 앞에선 다음에야 그것을 깨닫는다.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고통을 견뎌낼수 있을까. 나태해진 나에게 벌을 줄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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