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이십 대 후반을 운동에 푹 빠져 살고 있다. 몸 움직이는 걸 세상 싫어하던 이십 대 초반과 지금이 같은 사람의 인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뭔가 몸이 뻑적지근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클라이밍, 웨이트, 인터벌 트레이닝, 러닝, 요가, 필라테스 등 다양한 운동을 하며 몸의 변화를 느끼고 운동의 즐거움을 정말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일상에 운동이 진하게 자리 잡던 차에 얼마 전, 축구를 시작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축구가 아니고 풋살이다. 아는 축구 용어라고는 ‘티키타카’, ‘오프사이드’ 정도인, 풋살과 축구의 차이를 어렴풋이 알고 있고 축구 룰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축구를 시작했다.
최근에 ‘골 때리는 여자들’이라는 여자 축구 예능이 히트를 쳤다. 그렇지만 주 7일 운동하며 남이 운동하는 예능까지 챙겨볼 시간이 없어 그냥 그런 프로그램이 있구나 정도만 알고 있었다.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나고, 워낙 이 운동 저 운동 찾아보는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여자 풋살 클럽에 대한 스폰서드 광고도 보여줬다. 여러 운동에 재미를 붙이던 차, 공 가지고 하는 운동도 한 번쯤 경험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여자 풋살 클럽 계정을 팔로우하고 눈팅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골때녀를 보던 전 회사 여자 동기가 단톡방에서 ‘같이 풋살 배우러 다닐 사람?’이라고 물어보길래 궁금했던 차에 함께 하기로 했다. 입단비를 내고 등번호를 선택하고 풋살화를 구입하며 점점 축구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그리고 대망의 첫 수업.
공과 친해지는 시간을 먼저 가져야 한다며 코치님은 몇 가지 동작들을 가르쳐 주었다. 공을 이리저리 발바닥으로 발 옆으로 발 등으로 어루만져가며 아주아주 기초적인 동작들을 배웠다. 그냥 공을 뻥뻥 발로 차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름 정확한 위치에 공과 발이 만나야 원하는 방향으로 드리블을 하고 슛을 찰 수 있는 거였다.
한 시간 정도는 기초체력 훈련과 패스, 드리블 등의 훈련을 하고, 남은 한 시간은 팀을 나눠 미니 게임을 했다. 평소 여러 운동을 하며 심폐지구력을 향상해 놓은 덕에 풋살 경기장을 공 따라 달려 다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컨트롤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첫 게임에서 골까지 넣으며 역시 운동적 재능이 있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골을 넣는 것보다도 상대편의 공격수 발에 있는 공을 빼앗아 오는데 더 희열을 느낀다. 뭘 안다고 싶겠지만 원래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히히
풋살 클럽에 들어가 축구를 배우기로 시작한 이유를 구구절절 풀어놓는 이유는 풋살을 시작하고 들었던 말이 다른 운동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들었던 이야기 중에 인상적인 이야기를 몇 가지 해보자면,
“필라테스나 요가, 폴댄스 좋아하실 것 같은데, 풋살을 하시다니 의외 라서요. 제가 편견이 좀 있나 봐요.”
“아 혹시 남자 친구가 축구를 좋아해요?”
“축구 내가 가르쳐줄까?”
“축구하는 남자 소개해줄까?”
첫 번째 두 번째는 동일인물이 한 이야기인데, 생긴 걸로 내가 좋아할 운동을 판단했다는 것에 사과하면서도 더 편견 있는 질문을 해서 놀랬다. 축구가 재밌어졌다고 축구하는 남자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건 아니고, 만약 다음에 사귈 남자 친구가 축구를 좋아해서 같이 축구하며 데이트하는 것도 좋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난 그냥 축구가 재밌어 보여서 시작했을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너무 재미있어서 이 재밌는 걸 왜 아직까지 모르고 살았을까 싶다.
이 밖에도 “여자들은 좀 살살 뛰지 않냐?”라는 질문을 듣기도 했는데 골때녀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양쪽 눈에 멍이 들고 근육이 파열되는 정도로 뛰는 걸 보여주지만, 그는 프로그램이니까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한다고 쳐도, 현실의 골때녀들도 격렬함은 크게 다르지 않다.
풋살화를 사려고 주변에 축구 좀 찬다는 남자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도, 누구 선물해 주려고 그러냔 말을 들었었다.
아무리 여자가 축구하는 예능이 히트를 친다지만, 아직은 축구하는 여자는 의외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 반응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 축구를 그전에 접할 일이 없었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여자라서 말고는 딱히 답이 없다.
심지어 유명한 여자축구부가 있었던 중학교를 다녔었다. 우리나라 여자축구 대표선수 중 가장 유명한 지소연의 모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시간에 자유시간이 생기면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 혹은 발야구를 하는 것이 암묵적 합의인 것처럼 당연했다. 한 반에 한 두 명 있을까 말까 한 여자축구부 아이들만이 넓은 운동장을 가끔씩 남자애들과 누비고 다닐 뿐이었다.
축구하려고 급식을 거의 마시다시피 하고, 점심시간마다 공 따라서 강아지들 마냥 우르르 몰려다녔다가 땀냄새 풀풀 풍기며 5교시 수업시간을 들어오는 남자애들이 짜증 나서 축구를 하는 남자애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하려고 한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 재밌는 걸 고 녀석들만 했다니, 조금 억울한 기분이다.
매주 일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생겼다. 빨리 공 차고 싶다. 미래에 애를 낳아 키울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 아들이던 딸이던 내 아이에게 축구 가르쳐줄 수 있는 엄마가 되면 멋지겠다 라는 로망도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