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미치면 인생이 즐겁다

나는 가끔 버겁고 조금 두렵다

by 주박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을 꼽는다면 ‘박가네 여인들’의 넘버 2 가도리와 함께 떠났던 필리핀 여행이다. 사실 여행의 출발지는 샌프란시스코였다. 달러를 환전하고 무념무상 태평했던 우리는 여행 전날 무언가 아주 큰 것을 빠트렸다는 것을 인지한다. 바로 ESTA. 비자였다. 골든 게이트 파크와 금문교를 상상했던 우리는 떠날 수 없음에 절망했고 급하게 대책회의에 들어간다. 단 하루 만에 모든 항공편과 예약을 취소하고 슬퍼할 새도 없이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가여운 두 여인은 급하게 말레이시아로 여행지를 우회한다. 미국 여행의 아쉬움을 보장받기 위해 중간에 브루나이라는 나라까지 여행하는 알찬 코스를 짠다. 그날 밤 공항에서 만난 우리는 3번째 고비를 마주하게 된다. 출국 금지였다.


내 여권 잔여기간이 40일밖에 안 남아 있던 게 원인이었다. 말레이시아는 반드시 여권 잔여기간 6개월 이상을 요구한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가도리와 나는 망연자실하며 서로 쳐다봤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격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충격으로 밤을 새우며 계획을 짜다 기본적인 것을 놓쳤다. 캐리어에는 수영복과 스노클링 장비, 여름옷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속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고 자기가 놓친 거라며 혼자 안고 가지 말라고 내 마음의 짐을 반으로 나누어 들어주었다. 그날은 가도리가 나의 언니였다.


우리는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공항 의자에 걸터앉아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 항공 마지막으로 숙소를 취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어봤다.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어디든 떠날래?”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떠나야지!” 결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우리는 곧장 체크인 카운터로 덤덤히 걸어가 출국 금지를 말했던 항공사 직원에게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는 나라를 물었다. “필리핀 세부 가능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곧장 비행기 표를 구매했고 몇 시간 뒤 우리는 세부에 가 있었다.


하루 만에 샌프란시스코,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의 비행기 표를 3번 취소했다. 공항에서 항공편을 사고 무작정 떠나는 해외여행은 난생처음이었다.

가도리는 IS 출몰이 걱정되어 필리핀 근처는 가본 적도 없던 사람이었다. 난 다행히 여행한 경험이 있었다.


“언니를 믿어!”를 외치며 그녀의 안내 가이드를 자청했다. 숙박 역시 한 시간 만에 급하게 정했다.


맨 정신으로 있을 수 없던 우리는 살짝 미치기로 했다. ‘될 대로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최고급 호텔을 끊고 보홀 발리카삭과 세부 막탄을 여행했다. 수많은 액땜 덕에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날씨의 요정은 우리를 도와 여행 내내 최상의 날씨를 선물했다. 행운의 여신은 우리에게 외쳤다.


“너희가 경험하지 못한 최고의 여행을 만들어줄게!”


알리망오 크랩을 먹어도 알배기가 나왔으며 바다는 파도 없는 장판이었다.


보홀의 마지막 날 새벽, 우리는 갑자기 돗자리를 들고 모래사장으로 나가야 할 것만 같았다.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나갈 이유가 충분했다.


즉흥적으로 밖으로 나가 해변에 앉아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아침 해가 뜨기 시작했다. 일출이었다. 무언가에 홀리듯 서로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웃었고 (거의 동시에) ‘가자!’라고 외치며 벌떡 일어나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경험은 헤아릴 수 없는 값을 치른 보물이다.” - 셰익스피어



그렇게 우리는 금빛 바다 물결 속으로 몸을 던졌다. 하늘의 별들은 여행 내내 훨씬 환하고 아름답게 빛났다. 절망했지만 절실했던 우리는 그곳에서 잊지 못할 최상의 서비스를 받는다. 또한 웃긴 에피소드를 한가득 안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이 여행이 떠오른다. 힘들고 두려웠지만, 서로를 끌어줬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항상 위기에 봉착했지만, 우리에겐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었다. 현실을 인지하고 빠르게 일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 났고 결국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보물을 얻었다.


어둠 끝에는 빛이 있다



헤밍웨이의 장편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왜 하필 행복한 결말이 아니었을까? 인생은 사실 비극이기 때문이다.


매년 5월에서 11월 사이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한 건강 검진을 시행한다. 검사 결과지는 매번 떨림을 선사한다. 작은 종이 몇 장이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고 꼴딱 고개를 넘기듯 ‘통과’란 도장을 받으면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다. 그렇게 직장인들은 매년 떨리는 테스트를 받으며 겨우 가슴을 쓸어내린다.


마음이 답답한 어느 날, 잠을 뒤척이다 아침 안개가 걷히기 전 일찍 출근했다. 매번 걷던 황량한 벽돌 길에 분명 보이지 않던 작은 장미꽃이 피어 있었다. 추운 날씨에 장하기도 하다. ‘결국, 너는 꽃을 피웠구나.’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전쟁터에서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한 송이 꽃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현재 내가 무엇을 보며 사는지 그 관점에 따라 인생은 황천길도 꽃길도 될 수 있다.


시간은 인지하는 순간, 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방금 지났던 공간과 향취를 잡아둘 수는 없다. 불빛을 따라 달려야 한다. 불빛이 희미해도 달려야 한다. 불빛은 나를 어딘가로 안내하는 것 같은데 나만 길을 찾지 못한다. 황망하게 시간을 보내면 나를 비웃듯 불빛은 저 멀리 서 있고 한계에 다다른 나는 다시 달린다.


쫓아가는 속도는 매번 한 박 늦고 멈춰 있으면 더 느려진다. 앞서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내가 늦었다는 것만 정확히 알 수 있다.


넘어지고 무너진다. 상처로 얼룩져 상처를 먹는다. 아물지 못한 상처로 몸부림치다가 그마저도 잠식되는 나를 구할 방법은 오직 일어나는 것뿐이다. 그대로 잠들고 싶다. 경주에서 매번 지는 경주마는 달릴 때 행복할까? 앞서가는 동료를 보며 그저 즐겁겠지. 그렇게 눈을 감고 잠이 든다. 꿈속에서도 무언가에 쫓긴다. 나는 눈을 감아도 깨어 있고 깨어도 감 긴 눈으로 세상을 본다.


행복했던 기억과 설렘을 작은 보자기에 꽁꽁 싸맸다. 마치 세찬 바람이 불어올 것 같았다. 잠든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찾을 수 없는 깊은 골짜기에 웅크리고 넣어둔다.

세월처럼 내려앉은 먼지가 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예기치 못한 경험은 가끔 나에게 골짜기의 존재를 알려준다. 귀를 막는다.

상처는 아물어 흔적을 남겼지만, 그 전보다 진하게 나를 옭아맨다. 서럽고 억울하다. 차라리 골짜기에 숨기지 못하게 보자기가 넘쳐나면 나으려나. 그 순간 불빛은 점점 가까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말한다.


“정답이다.”


우울함이 나를 잠식할 때마다 그렇게 계속 보자기를 만든다. 순간을 넘기 위해 부단히 달린다. 나는 가끔 버겁고 조금 두렵다. 넘어져도 매번 아프다. 하지만 내 마음의 보자기를 다시 또 넣어본다.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잠들지는 않을 테니까 오늘도 그냥 우두커니 일어서 앞으로 걷는다.




책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에 쓰인 글입니다.


부유하다는 것은 가진 것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바라는 것이 적다는 뜻이다.
에스더 드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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