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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속의 지니 Oct 29. 2024

몽골 아저씨(사람)

몽골 울란바토르에 도착한 우리가 만난 가이드 분은 전형적인 몽골 아저씨였다.

다부진 몸에 넓은 어깨, 부푼 가슴과 대조적인 아담한 키와 짧은 목, 이제 막 추워지기 시작한 날씨에 볼은 시골 어린아이 같이 붉었다

그는 우리를 태운 코란도를 말처럼 몰며 시내의 악명 높은 도로 정체 구간을 누볐다. 중앙선을 없는 듯 필요한 곳이면 어디서든 90도로 좌회전하는가 하면 정말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 정도의 차간격을 유지하며 말머리를 밀어 넣듯 끼어들기를 했고, 수도 없이 패인 국도에서는 아이가 장난감 자동차 핸들을 돌리듯 지그재그로 운전을 하며 우리를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에 데려다주었다

테렐지 가는 길에는 국도 포장 상태가 너무 안 좋다며  몽골 사막(광야라고 해야 하나)을 가로질러 달리기도 했다.

그토록 터프하던 아저씨가 일정 중 하루는 몹시 주저하며 괜찮으면 우리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유치원 다니는 딸을 픽업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는 우리나라에서  5~6년을 일하며 알뜰하게 돈을 모아 돌아온 후 몽골에서 결혼하여 딸을 하나 낳았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온 돈을 종잣돈 삼아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고 한다. 가이드 일은 알바로 하는 것으로 렌터카와 또 다른 사업을 하고 있다며 자못 자랑스러워했다.

부지런한 이 몽골 아저씨는 하나뿐인 딸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기로 결심하고 우리로 치면 강남 신도시에 있는 고급 유치원에 자신의 딸을 보내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데리고 나온 딸은 화보에서 튀어나온 듯 딱 몽골 귀여운 아이의 모습이었다. 깨끗하고 빵빵하고 따뜻해 보이는 패딩과 어리광 부리는 모습이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음 금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딸과 함께 예정에 없던 몽골 재래시장 구경을 했고, 딸에게 예쁜 머리핀도 선물했다

시장을 돌아보며 조금은 편안한 대화를 하게 된 우리는 몽골 아저씨의 어색한 한국 말투가 어디서 온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모든 문장을 극존칭으로 말했는데 이유를 들어보니 한국 회사 사장님과 다른 한국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해야 했다 한다. 생활력 강하고 영민한 몽골 아저씨는 아마 싹싹하고 부지런하고 한국말도 잘하는  몽골 청년으로 인정받고 지냈을 것이리라. 한편으로 우리나라 노동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지냈을지 짐작되어 짠 한 마음이 들었다

몽골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던 중 우리는 몽골 아저씨에게 한국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 한국 영화 보셨어요?

- 한국 영화 몇 개 봤습니다

- 오~ 그래요?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나요?

- (잠시 생각하다)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영화를 한 번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서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 무서운 영화요? 귀신이 나오던가요?

- 아니요.  나쁜 사람들이 아이를 잡아가는 영화입니다

-???

- 나쁜 사람들은 아이를 돈 받고 팔려고 했습니다. 정말 끔찍했습니다

-???

- 사람도 많이 죽었습니다.

- 혹시… 영화 제목이 아저씨?

맞단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무섭다며 짧은 목을 쓰다듬고 몸서리까지 쳤다.

하지만 우리는 뒷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에 출현해서 몇 사람 목을 꺾어도 이상하지 않을 풍채의 앞자리 아저씨가 가로등 불 밝힌 밤길을 무서워 움츠리고 걸으며 뒤돌아 보고 뒤돌아 보고(본인이 그랬단다) 하는 장면을 떠올리니 한참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성공한 사장님이 된 몽골 아저씨는 내일 온도가 갑자기 많이 떨어질 테니 꼭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고 당부했고 다음날 이른 시간 출발 비행기를 타야 하는 우리를 실어 나르기 위해 새벽 눈발을 맞으며 호텔 앞에 늠름하게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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